내일신문 2014-09-01 23:23:08
지난 25일 부산 일대에 시간 당 130㎜의 집중 폭우가 쏟아지자 고리원자력발전소는 2호기 원자로의 가동을 멈췄다. 일상을 사는 시민들은 폭우가 몰고 온 인명 희생과 재산 피해에 마음 아파했다. 그러나 핵발전소의 안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폭우로 원전의 냉각수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에 가슴 깊은 곳을 얻어맞는 충격을 느꼈을 것이다.
원전가동 중단의 원인은 폭우로 냉각수 순환의 중심역할을 하는 취수 건물이 침수되어 파이프와 각종 전기시설이 작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냉각수가 돌지 않으면 후쿠시마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발전소 측은 수동으로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시켰던 것이다.
비 때문에 원자로 가동을 중단시킨 것은 처음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쓰나미로 붕괴된 후쿠시마 원전사태 같은 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해안 옹벽을 높이 쌓은 것이 오히려 폭우 피해를 불렀다고 한다. 한쪽을 보강하면 다른 한쪽이 허해지는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결과이다.
또한 시각을 달리하면 이 일이 기술적인 보완으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번 같은 집중 폭우가 쏟아진 예는 기상 관측사상 두 차례밖에 없었다고 하니, 기후변화의 시대에 원전 에너지의 효용성과 위험성을 어떻게 저울질해야 할 것인지 이만저만한 고민거리가 아니다.
크고 작은 원전 가동의 문제점이 드러날 때마다 자꾸 우리나라 해안가를 띠처럼 둘러싼 핵발전소를 떠올리게 된다. 23개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고 5개 원자로가 건설 중에 있다. 여기에 건설계획이 확정된 6개 원자로를 합치면 최소 32개의 원자로가 금세기 중반이면 남한의 해안가를 둘러치게 된다. 풍족한 에너지 공급을 원하는 한국의 산업계와 소비자들에겐 든든한 원군이 될 것이나, 이 원자로 중 하나에라도 치명적인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도 싫다.
한국의 바닷가에 세워진 원자로만 무탈하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반도와 좁다란 황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은 야심찬 ‘원전국가’ 계획을 실행중이다. 현재 가동 중인 원자로가 17기이고, 건설 중인 원자로가 27기다. 또 건설계획에 포함된 원자로가 50기이며, 제안 단계의 원자로는 무려 110기다.
중국이 의도한 대로 가면 현재 17기인 원자로는 금세기 중반쯤에 약 200기로 늘어날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는 중국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왕성한 황해 연안과 양자강 유역에 밀집되고 있다. 만약 하나의 원자로라도 잘못되어 핵 유출사고가 발생하면 방사능이 강물이나 편서풍을 타고 황해를 건너 한반도로 접근해올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 황해 연안에서 후쿠시마 규모의 사고가 난다면 한국은 그대로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일본은 55개의 원자로를 운용하다가 후쿠시마 폭발사고로 4기가 폐쇄됐다. 비록 폐쇄됐지만 계속 방사능을 누출하며 수 천 또는 수 만 년의 관리를 요하는 폐로를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2개의 원자로를 건설 중이고, 계획 중인 원자로가 12기, 제안신청 중인 원자로가 2기다. 앞으로 약 80기의 원자로 보유국이 될 것이다.
후쿠시마 핵 누출 사고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적인 사실을 보여주었다. 첫째 대규모 원전 핵 누출 사고가 나면 반경 수십 킬로미터의 땅은 거주하기 힘들고, 그 주변도 방사능 오염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둘째 지금까지 안전했다는 이유로 장차도 100% 안전할 수는 없다.
금세기 중반에 한국은 32기의 원자로를 몸뚱이에 주렁주렁 감고, 약 280여 기의 원자로를 주변에 깔아놓고 살아가는 형국의 나라가 될 것이다. 천재지변, 전쟁, 테러 등 원전의 안전성을 치명적으로 해칠 요인을 두루 갖춘 곳이 한반도와 그 주변이다. 20세기에 두 차례의 핵폭탄을 맞았고,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바로 이웃 일본에서 일어났다.
엊그제 기후변화의 위험을 경고하는 유엔보고서 초안이 나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그린란드를 비롯한 세계의 빙하가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미 녹아내리게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린란드 빙하가 다 녹으려면 100년은 훨씬 더 걸릴 거라지만, 다 녹을 경우 바다 수위는 지금보다 7미터 이상 높아진다. 수위 상승 자체가 인류 문명을 파멸시킬 만한 재앙이다. 그런 상황이 올 때 과연 바다 수위만 얌전히 올라간다는 가정은 순진무구한 생각이다. 지구의 기후체계가 요동을 칠 것이니 3년 전 우리를 전율케 했던 후쿠시마 쓰나미가 무색해질 것이다.
300여기의 원자로가 한반도 주변 바닷물에 잠기는 날이 온다고 생각해 보라.
'내일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조적 대통령이 준비할 에너지 비전 (1) | 2022.12.20 |
---|---|
스코틀랜드와 1000개의 나라 (0) | 2022.12.20 |
마약범 극형과 아편전쟁 (0) | 2022.12.20 |
누가 비행기 안전을 담보하랴 (0) | 2022.12.20 |
시진핑 한국인 마음 휘젓다 (0) | 2022.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