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4-09-15 16:06:06
세계 어느 곳이든 사람들이 국가를 형성하여 사는 곳에는 갈등과 사연이 있다.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으로 불리는 섬나라 영국은 중세 시대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으로 나뉘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다. 1995년 헐리웃 블록버스터 ‘브레이브하트’는 바로 13세기 말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 윌리엄 월리스의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707년 협정에 의해 한 나라로 통일 되었다. 영국을 일컬어 영어 약자로 UK라고 한다. United Kingdom, 즉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두 왕국의 연합으로 이뤄진 내력을 담고 있는 명칭이다. 이 연합왕국이 18,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모체가 되어 세계를 지배했다.
그 영합왕국이 깨지고 있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3일후인 18일 실시된다. 영국은 난리고, 전 세계가 숨죽인 채 주시하고 있다. 현대판 윌리엄 월리스라 할 만한 알렉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정부 수반이 창과 칼 대신 국민투표라는 평화적 무기를 들고 잉글랜드에 반기를 든 것이다. 월리스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샐먼드는 ‘스코틀랜드’ 독립의 영웅으로 기록될 공산이 커졌다.
3일 후 새로운 나라 ‘스코틀랜드’가 탄생되고 영국의 운명은 다시 한 번 쪼그라들지 모른다. 이번에 국민투표에서 독립이 부결될지라도 스코틀랜드 문제는 계속 영국을 짓누를 것이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면 영국은 어떤 꼴의 나라가 될까. 스코틀랜드의 면적은 약 7만9천㎢이다. 현재 24만4천㎢인 영국 땅은 16만5천㎢로 줄어든다. 스코틀랜드의 인구는 5백30만 명으로 만약 독립이 이뤄지면 영국의 인구는 6천4백만 명에서 5천8백70만 명으로 줄어든다. 스코틀랜드의 경제규모는 그리스와 비슷하다. 경제규모에서 세계 6위의 영국 순위는 약간 변동이 있겠지만 강국의 위치는 유지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300년 동안 한 나라였다가 분리되는 판에 국력을 간단한 산술로 계산할 수가 있을까. 국가분리 작업이 협상에 의해 오랫동안 진행되겠지만 경제, 정치, 외교, 국방,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난제가 속출할 것이 뻔하다. 스코틀랜드는 독립 후에 영연방의 일원으로 남을 뜻을 표명하고 있지만 갈등은 끝없이 솟아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축소된 영국이 겪을 물질적 심리적 영향은 상상하기 힘들다. 대두될 사례 한 가지만 들어보자. 영국은 핵전력 강국이다. 영국 해군은 스코틀랜드에 핵잠수함 전략기지를 두고 대서양 일대를 작전수역으로 삼고 있다. 스코틀랜드가 딴 나라가 된다는 것은 영국의 방위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영국과 독일은 수세기에 걸쳐 유럽의 라이벌 국가다. 25년 전 독일은 통일이 되어 유럽의 중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반면, 영국은 300여 년 간 통일되어 있던 나라가 쪼개지고 있으니 국가의 운명이란 참으로 변화무쌍한 것이다.
스코틀랜드 독립이 두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주는 일이 아니다. 전 세계에 갖가지 파장을 일으킬 것 같다. 분리 독립을 원하는 전 세계 수많은 소수 민족 지역과 이들 지역을 안고 있는 국가에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유럽의 수많은 국가들이 스코틀랜드의 국민투표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분리 독립을 원하는 소수 민족은 스코틀랜드에서 희망의 씨앗을 보고 있다.
스페인의 바스크와 카탈루냐, 이탈리아의 베네토, 프랑스의 코르시카, 벨기에의 플랑다스, 터키의 쿠르드지역이 스코틀랜드를 응원하고 있으며, 독일의 바바리아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은 스코틀랜드로 원정응원까지 가고 있는 판이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미국의 텍사스 독립운동가들까지 스코틀랜드를 주시하고 있다고 하니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갈등을 품고 있는 곳이다. 중국, 러시아, 캐나다 등 소수민족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의 구성원들에게 스코틀랜드의 메시지는 만만치 않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의 1,000개의 국가 탄생 예언이 떠오른다. 그는 1999년 저서 ‘메가트렌드’에서 세계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 거대한 추세인 반면, 국가나 지역이 분리 독립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글로벌 패러독스의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새로운 국가 출현의 가능성을 가진 전형적인 곳으로 스코틀랜드를 꼽았고, 그의 예언이 맞아 떨어질 판이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과 나이스비트의 1,000개의 나라 탄생 예측은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인의 마음에 불편한 반향을 일으키겠지만 교훈적 의미는 깊다. 지역적 이질성을 메워가는 작업을 게을리 하면 소외되는 지역은 갈라져서 사는 데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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