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그룹 114

불타버린 ‘자연사랑’

2019년 04월 10일 (수) 00:23:36 “19일 오전 1시26분께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자연사랑 미술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동부소방서에 따르면 옛 가시초등학교(폐교) 내 4개동 중 숙소 용도로 사용 중인 1동이 전소됐다. 이 화재로 소방서 추산 1,091만7,000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소방서는 화재 원인을 누전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지난 1월 19일 제주도 지방신문에 났던 아주 짧은 화재 기사입니다. 만약 내가 그날 이 기사를 보았다면 신음 소리라도 냈을 터인데, 이 뉴스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가 3월 초에 인터넷 검색 중에 이 화재 기사를 발견하고 아연했습니다. 친구의 불행을 보는 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40년 간 교유해왔던 친구 집에 불이 났는데도 ..

자유칼럼그룹 2024.01.01

정수기 시대에서 공기청정기 시대로

2019년 03월 12일 (화) 00:07:42 3월 들어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공습으로 대한민국은 비상입니다.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부터 초등학교 교실에까지 미세먼지 대응으로 난리 치고 있습니다. 마스크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어느 제조회사는 3월 초순까지 매출액이 작년 1년치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학교 등 공공시설 곳곳에서 공기청정기가 설치되지 않았다고 야단입니다. 미세먼지가 내습하기 시작한 지난 3일 둘레길 우면산 코스에 있는 소망탑 전망대에 올라갔습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날씨였는데도 남산 서울타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했습니다. 재작년 봄 환경재단이 주관한 미세먼지 토론회에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이기영 교수가 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공기는 눈으로 볼 수 없어야 좋은 겁니..

자유칼럼그룹 2024.01.01

국제학교 학생들의 귀성 비행기

2019년 02월 11일 (월) 00:19:30 설을 앞둔 지난 1일 제주에서 김포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시간이 늦어 허겁지겁 탑승하는 바람에 자리 찾기에 급급해서 비행기 객실 분위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출발할 즈음에 숨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 큰 보잉777 비행기 좌석이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로 가득했습니다. 처음엔 “겨울방학 중인데 웬 수학여행 학생들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수학여행 학생들은 희희낙락하며 시끄러운 법인데, 이 학생들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자기네들끼리도 떠드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근처에 앉은 여학생의 교복에 새겨진 학교 로고를 보고서야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한국학교 학생들이 아니라, 제주도 영어교육도시에 ..

자유칼럼그룹 2024.01.01

겨울 제주 올레 18코스

2019년 01월 14일 (월) 00:07:51 지난 12월 말 제주 올레길을 걸었습니다. 동행한 친구도, 나와 마찬가지로 고단해진 심신을 바닷가를 걸으며 달래보자는 생각에서 나섰습니다. 요즘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밤이 많아졌습니다. 걷는 게 아니면 할 일이 없는 상태를 만들어서 잠을 푹 자고 싶은 마음도 더해졌습니다. 젊었을 때 하루 커피 열 잔을 마시고도 잘 들던 잠이 요즘은 오후에 드는 카페라테 한 잔에도 도망가 버립니다. 하루 걸러 두 코스를 걸었습니다. 첫 날은 제주항 근처에 오뚝 솟은 사라봉에서 조천 포구까지 이어지는 제주 올레 18코스를 따라 걸었습니다. 5시간에 걸쳐 약 18㎞를 걸었습니다. 섭씨 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에 설한풍이 몰아쳤습니다. 제주도에 매우 드문 겨울 날씨였습니다. 가만히 ..

자유칼럼그룹 2024.01.01

로봇 간호사 ‘조라’ 이야기

2018년 12월 12일 (수) 00:07:32 “40이 넘으면 기술자도 기계 만지기가 싫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런지는 엔지니어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개인적 경험으로는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지털 시대로 깊이 들어갈수록 컴퓨터, TV세트 등 전자기기 활용도는 높아지고 AI스피커 등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기계들이 고장이 나도 덥석 만지며 고치기가 싫습니다. 사실은 어렵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계치(機械癡) 컴맹(盲)의 정도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젊은이들이 그렇게 편하게 쓰는 음식점의 전자 키오스크를 볼 때마다 내가 익숙하게 살아온 세상이 사라진다는 상실감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한, 나..

자유칼럼그룹 2023.10.21

전자 키오스크 앞에서

2018년 11월 14일 (수) 00:04:04 기차나 비행기를 타기에 앞서 콜라 한 잔에 햄버거 한 조각을 먹는 게 국물 있는 메뉴를 주문할 때보다 편할 때가 있습니다. 역이나 공항에서 급하게 요기를 해야 할 때 갈 수 있는 곳이 패스트푸드점입니다. 지난봄에 제주공항에서 비행기 출발 시간이 남아 있어 ‘롯데리아’에 들어갔습니다. 카운터에 가서 유니폼을 입은 여종업원에게 메뉴를 얘기했더니, 그 종업원은 식당 한쪽을 가리키며 “저기 있는 전자 키오스크‘에서 주문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 종업원이 “제가 도와드릴게요.”라며 나를 전자 주문판으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엔 음식 메뉴가 디지털 스크린에 나열되어 있고, 내가 주문하는 대로 종업원이 전자 메뉴판을 누르자 스크린에 ..

자유칼럼그룹 2023.10.21

항저우(杭州)-대운하 종점의 감회

2018년 10월 16일 (화) 00:17:02 1,400년 전 수양제(隋煬帝)가 만들었다는 대운하는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카페 창밖은 부슬부슬 이슬비가 오는데, 폭이 300m 이상 됨직한 운하에는 쉴 새 없이 화물선들이 오갔습니다. 대부분 건설자재나 화물을 실은 바지선이었고, 드문드문 유람선도 관광객을 태우고 지나갔습니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운하를 따라 내려오는 배들이 마치 고속도로의 자동차 행렬 같았습니다. 수양제의 치적이 오늘날 중국인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역사는 역사로 끝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월 하순 항저우(杭州)에 ‘번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BYD전기버스 조립공장을 찾아가 구경하고, 둘째 날은 ..

자유칼럼그룹 2023.10.21

소리꾼 장사익과 차 한잔 하며

2018년 09월 12일 (수) 00:24:52 가을의 길목에서 ‘소리꾼 장사익’과 찬 한잔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장사익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노래가 ‘찔레꽃’일 겁니다. 장사익이라는 가수가 있다는 것도, 그의 노래를 들어본 것도 이십여 년 전 어느 오월 신록이 우거진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에서였습니다. 어릴 때 찔레 순을 씹어 먹으며 들쩍지근한 맛을 보았을 뿐이지 그 꽃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는데, 하얀 바지저고리 차림의 장사익이 뿜어내는 처연한 소리를 들은 후에는 ‘찔레꽃은 슬픈 꽃’이라는 이미지가 마음속에 들어차 버렸습니다. 하여간 저렇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구..

자유칼럼그룹 2023.10.21

'폭염난민'이 쏟아질 텐데

2018년 08월 20일 (월) 00:11:15 “우리 집에도 에어컨 설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올여름에 집안 이슈가 하나 생겼습니다. 에어컨 설치가 긴급한 가정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섭씨 37도가 넘는 7월 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잠자다가 양 팔등의 감각이 이상해서 불을 켜고 보니 벌건 두드러기가 우글우글 올라와 있었습니다. 식중독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아프거나 크게 가렵지 않기에 아침에 병원에 갈 요량으로 응급조치로 얼음 팩을 몇 개 수건에 감아 팔을 얹고 뒤척이다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두드러기는 가라앉았으나 불긋불긋한 반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제야 그게 땀띠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의사한테 물어보지 못했지만 체온을 훨씬 뛰어넘는..

자유칼럼그룹 2023.10.21

기후변화와 제6의 멸종

2018년 07월 24일 (화) 00:09:07 아파트 고층에 앉아도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서울은 섭씨 38도를 기록했고 일부 내륙 도시는 39도 이상 올라갔습니다. 오죽했으면 대구의 더위를 아프리카에, 울산 더위를 브라질에 비유하여 ‘대프리카’ ‘울라질’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을까요. 에어컨은 이제 필수품처럼 됐습니다만, 에어콘 바람이 싫거나 전기 요금을 감당할 수 없어 이를 설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여름 나기가 어렵습니다. 기상청이 발표한 것을 보면, 1994년 폭염 기록이 사상 최고였다고 합니다. 그에는 못 미쳤지만 2016년에도 폭염이 우리를 괴롭혔는데, 올해 더위가 어떤 기록을 낼지 걱정됩니다. 사실 걱정이 아니라 ..

자유칼럼그룹 2023.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