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4-07-14 17:12:37
지난 6월 초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은 전임자들과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한국을 향한 친화적 수사(修辭)를 쏟아냈고 표정 또한 여유로웠다. 가수 출신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이 '대장금'과 '별에서 온 그대'를 언급하며 한국 대중문화에 보였던 관심도 이런 분위기 조성에 한 몫 했다.
20여 년 전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조심스러웠던 표정이나, 두 번이나 방한했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딱딱하고 규격화된 인상과는 대조적이었다. 하루 남짓한 서울 체류시간인데도 시진핑은 한국인의 마음을 휘저어 놓았다.
한중 관계는 한 해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질적인 변화는 몰라도, 양적인 변화는 이제 아무도 그 물결을 거스르기 힘들 정도다.
30년 전 한국인의 눈에 비친 중국은 외신을 통해 기이한 뉴스나 흘러나오는 '죽(竹)의 장막'이었다. 적성국이라는 딱지가 붙었기 때문에 양국 국민들이 서로 오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무역이나 문화적 교류도 할 수 없었다.
지금 한국인들은 중국과 중국인 없이는 일상의 삶이 편치 않을 정도가 됐다. 중국은 제1의 인적, 물적 교류 국가다. 양국 간 인적교류는 연간 800만 명이 넘고, 한국인 유학생 6만 명이 중국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중국인 유학생 6만 명이 한국의 학교에서 공부한다.
시진핑 방한의 정치적 하이라이트는 한중 정상회담이었지만 한중관계의 미래를 짚어 보는 맥락에서 의미 있는 이벤트는 서울대 강연인 것 같다. 이를 감지하기라도 한 듯 강연장에는 한국의 차기 대권후보 물망에 오르는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유력인사들이 학생들을 뒤로 밀어내고 앞좌석을 차지해 앉아 있었다.
그의 연설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판을 쏟아내는 이들도 많았다. 일리 있는 박수이고 일리 있는 비판이리라. 그만큼 한중관계는 복합적이다.
시진핑은 한중관계의 문화적 인적 교류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데 정성을 들였다. 중국의 태극문화와 한국의 태극기를 예로 들며 음양(陰陽)의 조화를 중시하는 양국의 국민적 감성을 상기했다. 그는 불로초를 구하러 제주에 왔었다는 서복, 중국서 독립운동을 한 김구를 거론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도 잘 모르는 신라왕자 김규각, 공자 가문을 한국에 퍼뜨린 공소,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의 후손이 한국에 거주한다는 사실 등을 일일이 열거했다.
시진핑은 한국인에게 직접 '중국의 꿈'을 설명했다. 2020년까지 국민총생산(GDP)을 2배(2010년 대비)로 올려 전면적인 소강사회(小康社會=중산층사회)를 만들고, 2050년까지 중국의 꿈인 '사회주의 현대국가'라는 중국의 꿈을 제시했다. 경제적으로 선진국과 대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아울러 그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를 향해 중국의 미래 모습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일관되게 평화를 유지하는 국가, 둘째 일관되게 협력을 추진하는 국가, 셋째 일관되게 배우는 국가를 강조했다.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심어야 할 국가 이미지라는 점에서 한국의 관심을 끄는 대목이고 수긍할 수 있다.
시진핑은 강연에서 일본이나 미국을 직접적으로 견제하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시아인프라은행 창설, 아시아의 다양한 안보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한국의 자주적 평화통일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아시아 중심의 세계관을 내비쳤다. 중국의 역사엔 제국주의 DNA가 있음을 감안할 때 관심과 비판을 불러들일 만한 대목이다.
시진핑 주석은 장쩌민이나 후진타오보다 훨씬 단기간에 자신의 권력을 안정화시켰다. 그는 2022년까지 중국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게 되며 중국의 국민총생산(GDP)이 미국을 앞서는 'G1'의 순간을 기념할 공산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한국의 차기 대통령의 임기 내내 그는 중국을 통치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체결이 임박한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경제적 관계가 더욱 긴밀해질 것이고, 예측불가능한 북한의 변화와 관련하여 시진핑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무대에서 중요한 발언권을 행사하게 될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시진핑의 서울대 연설은 '중국의 10년'을 읽을 수 있는 훌륭한 텍스트이다. 이 텍스트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데 한국도 대단히 중요한 변수라는 사실이다.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 지나친 피해의식에만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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