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3-07-17 오후 1:17:37
"한국은 선진국입니까?"
만약 외국인이 이런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대개의 한국인들은 좀 당황할 지도 모른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들은 더욱 헷갈릴 것이다. '후진국' 또는 '개발도상국'이란 말을 뇌 속에 새기며 살았던 게 10여 전까지 한국인들의 인식체계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일부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불려왔다. 충분히 그렇게 여길 만한 이유도 있다. 세계 15위 경제규모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라는 수치만으로도 이를 설명하는 데 어렵지 않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스마트폰 판매 점유율 세계 1위인 삼성전자와 세계 5대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를 갖고도 역시 한국은 선진국 대접을 받는 데 이상이 없을 것이다.
소비 측면에서 볼 때도 5000만 인구의 40%인 2000만명이 해외여행을 하는데 선진국이 아니고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아타깝게도 한국이 '아시아 선진국중 최악의 부패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아시아 선진국이라면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호주 등을 꼽을 수 있겠는 데 이들 나라에 비해 평가 점수가 너무나 낮다.
누가 한국의 청렴도를 이렇게 저평가했단 말인가.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라는 이름을 가진 홍콩의 컨설팅 회사가 그런 평가를 내렸다. 이 회사는 아시아 각국에 상주 연구원을 두고, 각국의 정치·경제 이슈 분석 및 국가·기업 리스크 관리를 자문한다고 한다. 1976년에 설립됐으니 꽤 전통이 깊다.
이 회사는 리스크 자문을 위해 20여년 전부터 매년 각국에서 활동 중인 외국 기업인 1000∼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방법을 통해 각국의 부패 정도를 평가하고 있다. 평가 점수는 가장 부패한 경우 10점이고 가장 청렴한 경우 0점이다.
한국이 PERC로부터 받은 점수는 6.98점이다. 싱가포르가 0.74점, 일본과 호주가 각각 2.35점, 홍콩이 3.77점이니, 아시아의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국이 2배나 더 썩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10년 전보다 더 부패했다는 것이 점수로 확인되고 있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PERC가 한국에 내린 평가는 혹평 일색이다. "부패에 둔감한 한국의 도덕관이 '국경을 넘어선 부패'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 "한국 부패의 뿌리는 정치·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층부까지 뻗어 있다."
PERC는 한국을 부패한 선진국으로 평가할 정도로 그렇게 신빙성이 있는 곳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국제적 명성을 가진 세계투명성기구(TI)의 평가는 어떨까. 세계투명성기구는 세계 각국 공공 부문 청렴도 평가 지표인 부패인식지수(CPI)를 해마다 발표한다.
공직사회와 정치권 등 공공 부문에 부패가 얼마나 존재하는지에 대한 인식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로, 조사 대상국에 거주하는 전문가를 비롯해 전 세계 기업인과 애널리스트 등의 의견을 반영해서 100점 만점을 기준 삼아 부패인식지수를 산출한다.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결과 한국은 56점을 받아 175개 조사 대상국 중 45 위에 올랐다. 2011년 43위에서 두 단계 떨어진 것이다. 선진국 그룹으로 평가받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순위도 27위에 그쳐 꼴찌 그룹을 면하지 못했다.
PERC의 가혹한 평가가 국제사회로부터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불만스럽지만 한국이 경제규모와 산업발전도를 감안할 때 무척 부패한 사회임을 확인시켜주는 지표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PERC가 한국의 부패 행태를 지적하며 "기업의 부패 정도와 부패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있어서 아시아 2위"라고 비판한 점이다.
기업과 공직사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부패의 피라미드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아닌가. 그저 평범하게 살며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지적이다.
특히 "한국 부패의 뿌리는 정치 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층부까지 뻗어 있다"는 지적은 섬뜩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정치권과 고위공직사회 등 국가의 상층부가 썩어가고 있음을 말한다. 이런 사회에서 창조경제를 말하는 것은 보통 웃기는 일이 아니다.
이런 부패국가 이미지를 그대로 두고 우리 사회를 선진 사회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보통 잘못된 발상이 아닌 듯 싶다. 자동차와 스마트폰 뿐 아니라 부패도 수출하는 나라로 이미지가 굳어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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