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3-05-21 17:00:07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명저 '코스모스'를 읽다가 점점 다가오는 지구 최후의 날을 상상해 본다.
태양은 거대한 수소폭탄이다. 태양이 내부의 수소 연료를 계속 태우며 밝아지다가 그 수소가 소진되면 적색거성(赤色巨星)으로 붉게 변하며 급속히 팽창한다. 태양의 화염은 수성과 금성을 집어삼키고 끝내는 지구를 덮친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바닷물이 팽창하면서 해수면이 부풀어 오른다. 대기가 수증기로 가득 차는 것도 잠시뿐이고 바닷물이 펄펄 끓어오르며 우주로 증발해버린다. 물을 잃어버린 지구는 토스터 속의 빵처럼 바짝 타들어가다 팽창하는 태양에 먹히고 만다. 지구를 먹은 태양은 다시 축소하기 시작하고 끝내 산산조각이 나면서 우주의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태양도 지구도 없는 세상이 온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지구 최후의 날을 걱정하지 않는다. 50억년 후에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오월의 신록이 영롱하다. 푸른 잎사귀 사이로 빛나는 태양이 우리의 눈을 간질인다.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에서 그 에너지의 아주 일부를 받은 지구가 생명이 가득한 행성으로 진화해왔다. 지구는 인간이 살기에 알맞은 곳으로, 정말 오랫동안 온화하고 조용한 곳으로 존재해왔다. 기껏 요동을 쳐봐야 어느 구석에서 태풍이 불고,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앞으로 40년 안에 지구가 지금과 같은 수준의 온화하고 조용한 곳이 될 수 없다면 그건 좀 걱정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이산화탄소 증가에 의한 기후변화를 두고 하는 얘기다.
지난 5월 9일 인류는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매우 경고적인 기록을 갖게 되었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어선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공기를 구성하는 물질 분자 100만개 중에 이산화탄소 분자가 400개, 즉 공기 중 이산환탄소 구성비가 0.04%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산화탄소(CO2)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다. 지구 표면에서 복사된 태양열(적외선)을 가두는 담요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의 선구자는 U. C. 샌디에이고의 화학 교수 찰스 킬링(Keeling) 박사였다. 그는 1958년 하와이 마우나로아 화산 해발 3,400m에 위치한 미국 국립 해양관측소에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했고 그 때 측정치가 315ppm이었는데 이제 400ppm에 이른 것이다. 중국과 인도 등 인구 대국의 산업화가 진척되어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의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산화탄소 증가 템포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5년간 85ppm, 즉 27%가 증가했다.
400ppm이라는 이 수치가 왜 무서운 지수(指數)일 수밖에 없는가.
과학자들은 남극의 빙하에 갇혀있는 공기 기포를 측정하여 과거 80만 년 동안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거의 정확하게 알아냈다. 이 측정값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80만 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는 180~280ppm 범위에서 변동했다. 20세기 들어 300ppm을 넘어 섰고, 21세기 들어 400ppm을 넘어선 것이다. 지금의 추세로 간다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과학계가 마지노선으로 보는 450ppm까지 도달하는 데 25년밖에 남지 않았다. 금세기 안에 500ppm까지 도달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지구가 어떤 상황에 직면할 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다만 고기후학(古氣候學)이 그나마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만~300만 년 전인 신생대 제3기 때 이산화탄소 농도가 415ppm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그 때 지구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섭씨 3~4도가 더 높았고, 해수면은 오늘날 보다 최고 40m까지 상승했다. 화석 분석결과를 보면 어류, 조류, 포유동물, 산호초의 생태계가 극도로 위축되거나 멸종위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제3기의 기후변화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녁 하늘에 빛나는 샛별, 인류는 그 별에 금성(비너스)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탐구해낸 금성의 실체는 두꺼운 이산화탄소 층에 의한 온실 효과로 섭씨 450도의 지옥임이 드러났다. 금성을 연구한 제임스 한센 같은 과학자는 인류가 땅 속의 화석연료를 모두 채굴해서 태운다면 지구도 금성처럼 된다는 ‘비너스 신드롬’을 주장하고 있다.
인류는 지금 서서히 더워지는, 그러나 언젠가 끓게 되고 말 냄비 물에 앉아 낮잠을 즐기는 개구리와 같은 존재는 아닐까. 태양이 지구를 삼키기 전에 인류 스스로 지구에 불을 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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