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3-09-06 15:40:26
8월 하순 관훈클럽 '문화유적답사'여행에 참여하여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를 처음 구경했다. 엿새 동안 1500㎞의 버스 여행, 일본열도를 많이 생각하는 기회였다.
우리는 일본을 태평양 서쪽 구석에 가늘고 길게 늘어선 섬나라로, 실제보다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홋카이도는 남한에서 경상남도를 뺀 것만큼 넓다. 눈 덮인 화산들, 짙푸른 숲, 젖소가 풀을 뜯는 드넓은 목초지, 트랙터가 없다면 관리가 불가능한 농장. 수량이 풍부한 강과 내가 끝없이 이어진다. 몇 개의 도시를 제외하면 사람이 텅텅 빈 섬, 전체 인구가 서울의 절반 정도라니 상상이 어렵지 않다.
이번 여행에서 러시아와 분쟁 중인 북방영토를 보았다. 그리고 잃어버린 북방4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환 염원을 읽을 수 있었다. 북방4도를 실제 보고 일본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일본이 러시아 중국 한국과 벌이는 영토분쟁의 성격과 양상이 훨씬 선명하게 다가오는 듯했다.
홋카이도 동부지역은 마치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벌렸을 때 모양과 비슷하다. 검지처럼 동북단 오오츠크해로 튀어나간 땅이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시레도코(知床)반도이고 검지처럼 태평양쪽으로 튀어나간 곳이 일본열도의 최동단 네무로(根室)반도다.
오오츠크해에서 시레도코반도를 가로질러 태평양쪽으로 이동하면 2차 대전 이후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쿠나시리 섬(國後島)이 바로 20㎞ 앞 눈앞에 선명히 펼쳐진다. 서울 면적의 두배가 넘는다.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쿠나시리 섬의 꼬리를 물며 서울 면적의 다섯배쯤 되는 에토로후 섬이 캄차카반도를 향해 뻗어있다. 한라산만큼 높은 활화산이 뭉게구름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쿠나시리 섬의 모습을 보노라면 한국에서 추상적으로 이해했던 북방영토 분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네무로 반도의 최동단 노삿푸 곶에 서면 불과 4㎞ 앞 해상에 러시아가 점유한 하보마이군도가 줄줄이 늘어선 것을 볼 수 있다. 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면 러시아의 건물 유리창까지 훤히 보인다.
3곳 분쟁지역 중 센카쿠에 가장 관심
일본인들은 이곳에 '북방관' '망향의 집' '기원의 불' 등 각종 기념관과 조형물을 세워 북방영토 반환을 위한 국민적 염원을 불태우고 있다. 1만7000명의 일본인들이 북방4도에 거주하다가 2차대전 패전 후 소련군 점령으로 쫓겨났으니 그 상실감을 알만하다. 자료관에는 북방영토반환을 요구하는 일본인의 서명이 8400만명에 이르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북방4도의 총면적은 약 5000㎢로 경상남도의 절반이니 좁은 땅이 아니고, 영해에 걸린 이해 또한 크다.
일본이 영토분쟁 이슈로 삼는 곳은 북방4도, 센카쿠군도, 독도다. 북방4도는 땅의 크기로 볼 때 몇 개의 바위섬으로 된 센카쿠나 독도와는 비교할 수 없다.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나 일본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관심으로 볼 때도 가장 중요한 곳은 북방4도다. 그런데 관훈클럽 현지 세미나에 발표자로 나온 야마구치 지로 홋카이도대학 법학부교수의 견해는 의외였다. 3개 분쟁 섬 중에 일본이 제1순위로 생각하는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야마구치 교수는 센카쿠 군도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정확한 그의 진의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센카쿠 군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분쟁이 일본의 안보에 다급한 위협으로 등장했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센카쿠는 일본이 점유한 상태에서 중국이 이를 부정하며 그 근해에서 무력시위를 시도하고 있는 곳이다. 점유당한 북방4도 땅을 찾는 일보다 점유한 땅을 잃을지 모른다는 현실적 두려움, 그 상대가 중국이라는 사실에 일본은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체질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일본 땅에서 일본의 영토분쟁 문제 설명을 들었을 때 좀 쿨한 소회가 머리를 스쳤다. 첫째 적지 않은 국력을 가진 나라로 자란 대한민국이지만 중국과 일본이라는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존재를 유지해 나가려면 국가 체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당연한 생각이지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둘째 우리 국민은 일본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일본의 내면을 잘 공부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북방4도, 센카쿠, 독도는 각각 다른 분쟁의 특성을 갖고 있고, 일본인의 일반 정서도 각각 다르다. 국가의 지도층이나 오피니언 리더라면 독도문제가 나왔을 때 단세포적으로 대중에 영합하다 말 게 아니라, 일본의 전략과 생각을 꿰뚫어보며 저울추를 가늠질하는 면모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진왜란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조선과 일본의 싸움이지만, 일본과 중국은 조선 등 뒤에서 협상을 했을 정도로 국제전의 성격이 강했던 사실을 기억에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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