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3-08-05 15:37:08
올 여름 갑자기 북극이 한국 언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너무 더워서 북극의 찬바람이 그리워진 그런 건 아니다.
'해운 3사, 내달 북극항로 뚫는다'
'코리아, 북극 개발 길을 열어라'
'유럽 에너지, 내달부터 북극항로로 열흘 빨리 온다'
6월 이후 신문 지면에 큼직한 활자로 제목이 뽑혀 나온 것만 해도 뭔가 희망적인 분위기 일색이다.
이렇게 북극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뜨거워지는 것은 지구온난화로 북극을 덮고 있는 얼음이 여름 동안 획기적으로 녹으면서 북극해가 상선이 통행할 수 있는 바다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북극항로가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게 열리고 있다. 작년에는 9월 한달 정도 가능했던 항로가 올해는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로 늘어났다. 2007년 독일 상선이 첫 테이프를 끊은 후 해마다 북극해 통과 상선수가 증가하더니 작년에는 46회로 급격히 늘었다. 러시아의 LNG선도 북극해 처녀항해에 성공했다.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다. 따라서 주요 수출입 대상지역인 유럽과 미국으로 화물을 실어 나를 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현재 부산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네델란드의 로테르담까지의 기존 항로는 거리가 2만㎞이고 40일이 걸리는데,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거리는 1만3000㎞로 줄고 시간은 30일로 단축된다. 북극항로를 이용해 뉴욕까지 화물을 운송하면 파나마 운하를 거치는 것보다 운송일자는 6일, 운송거리는 5000㎞ 줄일 수 있다. 연료 등 단순 비용만 고려해도 엄청난 이익이 걸려 있다.
한국의 해운업계와 해양수산부가 이 기회를 포착할 채비에 바쁘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현대글로비스 등 해운 3사가 올 여름 북극항로를 통해 유럽의 화물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시범운항을 하기로 결정했다. 해양수산부도 해운업계의 보폭에 맞춰서 북극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북극항로 이용시 시간·거리 획기적 단축
그 대책 중엔 북극항로 개척에 필요한 쇄빙선 건조계획도 있다. 남극에 파견된 아라온호에 버금가는 제2의 쇄빙선을 건조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북극 탐험을 본격 시도한 것은 19세기 전반부터였고, 미국의 로버트 페어리가 개썰매를 타고 북극점을 밟은 것이 1909년 4월이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 국토의 140배나 되는 북극해를 덮고 있는 빙설(氷雪)이 녹아내리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북극해는 눈과 얼음의 바다로 인간의 문명이 미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늘 아래 영원히 존속하는 것은 없다.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북극해의 대자연도 인류 문명의 입김에 의해 급속히 변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에 의한 이산화탄소의 배출로 온난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여름철 북극해의 얼음 면적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030년 여름이면 북극에는 얼음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북극해는 북극곰이 서식하는 곳이 아니라 수많은 선박이 몰려다니는 바다로 바뀔 것이다.
북극해 연안과 해저에는 석유, 천연가스 및 각종 광물자원과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이미 북극해 연안국을 중심으로 세계 주요 국가들은 얼음이 사라질 북극해의 자원 및 전략적 잠재력을 선점하려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를 필두로 미국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덴마크(그린란드)는 첨예한 이해관계를 드러낸다. 이들 북극해 8개 연안국들은 정부간 협의체인 북극협의회(Arctic Council)를 만들고 배타적 권리를 굳히고 있다.
그러나 연안국의 지배하에 내버려둘 수 없다고 나서는 나라들이 줄을 서자 북극협의회는 영구옵저버국 지위를 12개국에 인정했다. 중국 일본과 더불어 한국도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의미가 큰 것이다.
북극 얼음 녹아도 기후변화 없을까
과학자들의 예측에 의하면 2020년쯤이면 북극항로가 6개월 이상 열리고, 2030년이면 연중 배가 다닐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 예측대로라면 약 17년 후 북극해는 지금과 같은 극한의 바다가 아니라 지중해나 동중국해와 같은 물류와 자원의 바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극해를 둘러싼 세계 주요 연안국들의 움직임을 보거나, 세계 해운업계의 동향을 보면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걱정거리가 아니라 축복처럼 느껴진다.
북극해 얼음이 한시 바삐 녹을수록 인류가 건질 경제적 이득은 커 보인다. 그러나 북극해가 번창하는 바다가 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북극의 얼음이 다 녹아도 기후변화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 징후를 보면 그건 불가능한 기대 같다. 얼음이 사라진 북극, 복(福)일까 화(禍)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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