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원자력마피아

구상낭 2022. 12. 5. 12:37

내일신문 2013-06-19 18:43:57

 

'마피아'는 매우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단어다. 마피아(Mafia)는 일반적으로 이태리 이민자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 내에 만든 비밀범죄조직을 일컫는다. 마피아는 스스로를 마피아라고 부르지 않고 "코자 노스트라"(Cosa Nostra)라고 표현한다. 영어로 'Our Thing', 즉 '우리들의 일'이다. 특수한 집단 이익의 어감이 강하게 풍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원자력마피아'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원전비리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원전마피아'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는 '원전 비리의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를 시인하며 "부품제작사, 시험기관, 발주처 사이의 폐쇄적 구조로 사슬처럼 얽혀 있는 유착 형태"라며 "이래서 원전마피아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전비리와 관련해 마피아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국무회의에서 "역대 정부를 거치며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마피아'란 말은 올여름 불쑥 나온 것이 아니다. 위조 부품공급 비리로 원자로 가동 중단이 잦았던 최근 몇년 동안 언론에 떠오르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올해 두 가지 원인이 결합되면서 들끓은 이슈가 되었다. 우선 지난 4월 이래 불거진 시험성적위조 부품비리로 원자력 3기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고장과 검사 또는 부품비리로 총 23기의 원자로 중 10기가 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여기에 일찍 찾아온 더위로 예비전력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이 모든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원자력마피아라는 책임과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어쩌다 한국의 원자력에너지 분야 기술인들이 과학기술자의 윤리와 직업윤리를 상실하고 사적 이익만 추구하는 '공공의 적' 쯤으로 몰리는 것일까. 과연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이 단순히 사적인 이익추구 때문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특정대학 출신 선후배 카르텔 구조
원자력 에너지는 우리나라 전력생산의 30% 안팎을 차지한다. 원자력 발전소를 독점적으로 운영 관리하는 곳이 한국전력이 세운 (주)한수원이다. 한수원을 중심으로 원자력발전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발전소의 설계와 감리를 맡은 엔지니어링 분야, 부품납품 및 검증업체들, 그리고 그 위에 감독과 안전 규제를 맡은 산업자원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 같은 정부 기관이 포진해 있다. 이 생태계 안에서 한수원, 엔지니어링분야, 납품업체가 부품시험성적을 위조해도 봐주고, 퇴직하면 관련업체에 취업을 시켜주는 등 주거니 받거니 하는 나눠먹기식 유착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진단인 것 같다.

원자력비리가 터질 때마다 지적되어 왔지만 문제의 본질을 살피려면 세 가지 측면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다. 첫째, 원자력이 전문기술을 요하는 분야이다 보니 특정대학 출신 선후배들이 원자력산업 생태계에 배타적으로 포진하게 되어 사적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이다.

둘째, 이런 원자력산업의 기술적 특성에다 보안상의 이유로 내부에서 무슨 짓을 해도 밖에서는 자세히 알 수 없는 폐쇄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감독권을 가진 산업부와 안전운영을 감시해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견제와 균형의 감시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 비리구조를 척결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역대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척결의지도 강해 보인다. 그런데 정부의 일처리 방식을 보니 처벌 위주로 가는 것 같아 비리구조의 혁파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검찰의 속성은 범죄만 보는 것이다. 비리의 고리가 어떻게 연결되고 또 작동하는지 정확한 맥락과 실상을 알아내는 것이 검찰수사와 별도로 이뤄져야 한다.

비리구조 척결이 무엇보다 중요
원자력 전문가들을 싸잡아 범죄 집단처럼 몰아가면 자칫 문제해결에서 빗나갈 수 있다. 원자력분야 과학기술자들도 젊은 날 자긍심을 갖고 에너지산업에 기여했던 사람들이고, 한때 건강한 국가관도 가졌을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원자력마피아라는 오명을 쓰게 된 데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비리의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구조 때문일 것이다.

원자력 생태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는 정부 감독기관의 책임도 크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재앙은 쓰나미 자체보다 정부감독기관과 산업계의 유착이 더 큰 원인이라고 지적됐다. 국회청문회에 의하든, 감사원 감사에 의하든, 아니면 객관성과 파워를 가진 태스크포스를 만들든, 원자력비리의 생태구조를 밝혀 국민에게 알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