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우리 땅엔 이런 돌맹이도 없구나

구상낭 2022. 12. 5. 12:38

내일신문 2013-07-04 12:55:00

 

금강산을 처음 구경했을 때 참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은 봉우리나 골짜기나 할 것 없이 온통 바위로만 형성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자주 보는 북한산은 물론 암벽이 많다는 설악산도 숲이 주를 이루고 바위는 작은 장식품처럼 솟아 있다.

 

금강산의 바위덩어리가 지구의 진짜 형상인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구를 덮고 있는 흙의 두께는 평균 1미터에 훨씬 못 미친다고 한다. 지표면에서 평균 두께 1미터의 흙만 걷어내면 지구의 모습은 생물이 서식할 수 없는 암석 덩어리인 셈이다.

 

그러나 흙 밑에 켜켜이 쌓인 바위가 쓸모없는 돌덩이가 아니다. 암석 속에 금은보석이 박혀 있고, 철광석도 묻혀 있고, 우라늄광도 있다. 화석연료도 암벽 층 속에 묻혀 있다. 인간은 암석 상태로 존재하는 석탄을 파내 쓰다가, 좀 더 에너지 효율성이 좋은 액체 상태의 석유에 손을 댔고, 기술이 더욱 진보하자 기체인 천연가스를 꺼내 쓰고 있다. 이것이 전통적인 화석연료다.

 

최근 ‘셰일’(shale:頁岩)이라는 암석이 세계 에너지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지하 수백 또는 수천 미터에 형성된 셰일 층, 지질시대에 진흙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이 암석에는 천연가스가 갇혀 있다. 시추기술의 발달로 셰일 층에 배어 있는 천연가스를 경제적으로 추출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언론을 이를 일컬어 셰일가스 혁명이라고 말한다. 석유자원 고갈로 중동에 석유수입을 의존하던 미국이 갑자기 21세기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신을 하게 되었다고 야단인데, 그게 바로 셰일가스 덕택이다.

 

셰일 가스 혁명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세계적 에너지 전문가 다니엘 예르긴의 2011년 역저(力著) ‘더 퀘스트’(The Quest: 국내 번역명 ‘2030에너지 전쟁’)를 읽어보면 한 사람의 열정과 끈기가 세상을 얼마나 급격히 바꿔놓는지 실감하게 된다.

 

조지 미첼은 그리스에서 염소를 치다 미국 텍사스로 건너온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A&M대학 석유엔지니어링학부를 고학으로 마쳤고 2차 대전 직후 휴스턴의 허름한 사무실 한 칸을 빌려 ‘미첼에너지’를 설립했다. 그는 당시 붐을 이루던 석유를 제치고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 눈을 돌렸다. 그는 천연가스야말로 미래의 에너지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1980년대 가스 생산이 줄면서 곤경에 처했다.

 

고전하던 미첼은 1982년 입수한 지질보고서를 읽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보고서는 텍사스 땅 밑에 광범하게 셰일가스 층이 분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경제성이었다. 미첼은 새로운 기술개발에 도전하기로 했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실망스런 결과만 나왔고, 셰일 가스 개발에 나섰던 회사들이 거의 사무실 문들 닫았다. 주변에서는 미첼에게 “돈을 낭비하는 짓”이라며 투자를 말렸으나 미첼은 “이 길밖에 없다.”며 고투를 계속했다.

 

전통적인 천연가스 채굴은 지하의 배사(背斜)구조에 고여 있는 천연가스에 수직으로 시추공을 뚫어 끌어올린다. 그러나 셰일가스의 분포는 전혀 다르다. 고여 있지 않고 셰일 층의 틈바구니에 광범하게 퍼져있다. 따라서 셰일가스를 추출하려면 수직으로 땅속을 파고들어가다가 셰일 층을 만나면 수평으로 굴을 뚫어가면서 암석을 부셔서 노출 면적을 가급적 넓게 만들어야 한다. 셰일 층을 부셔내려면 다량의 물을 모래 및 화학약품과 섞어 초고압으로 분사하는 수압파쇄공법을 써야 한다. 미첼은 1998년 수압파쇄공법의 개선에 혁신적 돌파구를 마련했다. 미첼은 이 공법을 통해 셰일가스의 경제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으나 회사는 투자여력을 다 잃어버렸다. 미첼은 35억 달러를 받고 회사를 팔아 넘겼다. 이 거래로 셰일가스는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드는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00년 천연가스 총 생산량에서 셰일가스가 차지하는 몫은 1%에 불과했으나 2011년 25%에 도달했고, 2030년에는 50%를 예상하고 있다. 미국은 가스 생산 1위의 자리를 러시아로부터 탈환했고, 세계 에너지 권력은 중동과 러시아에서 급속히 북아메리카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불원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신하게 된다. 셰일가스 매장량 1위는 중국이고 미국이 2위다. 중국이 기술을 따라잡으면 미국과 함께 셰일가스 생산에서도 빅2가 될 판이다.

 

한국의 땅 바닥도 다 암석인데 셰일 층 발견 소식은 없다. 그러나 셰일가스 붐은 명암이 있지만 한국에게 일단 희소식이다. 전 세계 셰일가스 매장량은 인류가 60년 쓸 분량이라고 한다. 중동과 러시아의 입김은 많이 약해질 것이다. 에너지 다소비국으로서 한국은 자원수입선의 다원화가 훨씬 여유로워진다. 땅속에 셰일 층은 없지만,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셰일가스를 창조적으로,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자원외교를 이끌어갈 역량을 기르는 것이 과제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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