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9 11:47:45 게재
11년 전 금강산에 갔다. 관광 간 것이 아니라 나무 심으러 갔다.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 운동본부가 2007년 초봄 신혼부부 100쌍을 초청하여 금강산에서 나무 심기 운동을 벌일 때, 운동본부의 초청으로 동참했다.
우리가 나무를 심은 곳은 그야말로 민둥산이었다. 금강산은 금강송으로 울창했지만 바로 인근 야산은 놀랍게도 황폐했다.
북한 주민 100명이 남한에서 올라간 250명의 식목 행사를 도와주었다. 북한 주민들이 실제 일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날 3,000그루의 잣나무를 심었다. 남한의 신혼부부들은 땅 파는 것도 서툴기 그지없었고 행동이 굼떴다. 북한 주민들은 삽시간에 비탈 위까지 나무를 심으면서 올라갔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남한에서 온 사람들이 나무 심는 것을 도와주었다.
“북한 사람들 정말 일 잘한다.”고 얘기했더니, 4년째 나무심기 운동을 진행했던 ‘우리강산푸르게운동’ 본부 사람이 귀띔해줬다. “1년 후에 와보면 신혼부부들이 굼뜬 행동으로 심은 나무는 거의 살아 있는데 북한 주민이 심은 나무는 많이 죽어 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행동은 느려도 신혼부부들이 북한까지 왔으니 정성들여 심기 때문에 근착이 잘 되는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나무 심기가 거의 끝날 무렵 나를 도와주던 북한 주민이 “선생님, 이 나무들이 자라 열매를 같이 따먹을 날이 언제 오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때 문득 북한 시골 사람의 인정 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남북이 자유로운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 후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달리 느끼는 게 있었다. 북한 사람들은 잣나무를 심으며 ‘열매를 따 먹을’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남한 사람들은 열매를 생각하기보다 푸른 숲이 우거지는 것에 신경이 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게 차이점 같았다.
그 후 핵문제로 남북관계는 긴장만 계속됐다. 물론 북한에 나무 심기도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은 열매 따먹을 생각
지난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어진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남북한 긴장대치 상황은 급격히 풀렸다. 이 뉴스를 듣고 문득 생각나는 것은 금강송이 무성한 금강산의 아름다운 봉우리가 아니라, 민둥산에 내가 심었던 몇 그루의 잣나무였다. 그리고 북한 주민이 열매를 같이 따먹을 날이 오겠느냐는 질문이 기억에 떠올랐다.
내가 금강산에 심은 그 잣나무는 아직도 살아서 잘 자랄까?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
남북정상회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실무회담이 분야 별로 속속 열리고 있다. 지난 4일엔 남북한 산림 당국자가 판문점에서 만나 산림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우선 시급한 협력 사업으로 비무장지대(DMZ)의 공동방제와 대형 산불 공동 대응에 합의했다고 한다. 소나무 재선충 등 병충해와 산불은 한번 번지면 휴전선의 철조망으로도 막을 수 없다. 그 피해가 회복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이런 산림파괴의 요인이 제거되어야 나무를 심어도 제대로 키울 수 있다. 이 사업을 위해 남북한은 7월 중에 비무장지대에서 공동으로 현장점검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남한 산림청과 국립수목원이 비무장지대 생태계 보전과 복원을 위한 연구를 해왔다고 하니, 이 기회에 이런 일도 병행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동안 DMZ의 자연보전에 대한 관심은 국내외에서 활발히 논의되던 일이었다. 60여 년간 민간출입이 통제되어 자연 생태계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세계에 남아있는 유일한 냉전 지대라는 점에서 특이한 국제 공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미 회담이 성공한다면 DMZ는 새롭게 조명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일방적으로 의욕을 불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비무장지대야말로 남북 모두에게 민감한 군사시설로 꽉 들어차 있는 곳이어서 산림협력사업 차원으로만 처리될 사안이 아닐 것이다.
산림협력의 큰 줄기는 역시 북한 땅의 산림녹화 협력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산림은 식량생산을 위한 과도한 경지 개간과 사방(砂防)사업의 부진으로 파괴되었다. 현재 북한 산림 총면적은 899만ha인데, 그중 32%인 284만ha가 황폐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나 북한에 나무 심어보고 싶을 것
그동안 남한의 산림당국은 남북교류협력에 대비하여 북한의 산림 복구를 위한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북한 기후와 생태를 연구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는 대규모 양묘장 등을 운영해왔다.
김재현 산림청장은 남북의 땅을 산림으로 잇는 의욕적인 구상을 밝혔다. “백두대간과 민통선 지역 산림 훼손지를 복원해 한반도 핵심 생태축의 건강성과 연결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남북의 체제 차이에서 오는 갈등 가능성이 적은 게 산림협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한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산림녹화 성공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산림복구가 시급하다.
누구나 북한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보고 싶을 것이다. 아마 어떤 교류협력보다도 산림복구는 광범한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 같다. 남한도 50년 전 지금의 북한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황폐한 산림을 보며 살았다. 북한이 얼마나 문을 열고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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