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4 13:18:59 게재
북한은 과연 비핵화에 나설까. 지금은 아마 다수 국민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믿고 있을 듯싶다. 작년 말 김 위원장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인 듯싶었다.
그러나 4·27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상황은 일시에 반전됐다.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미·북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북한체제보장을 합의하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 같다.
전쟁 중인 두 나라가 종전협상을 타결하면 전쟁은 일시에 끝난다. 그러나 비핵화 합의는 다르다. 북한처럼 35년 이상 핵시설을 가동하며 핵무기를 생산하고 미사일을 개발해온 국가의 비핵화 합의는 문제 해결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정치적인 비핵화 선언이나 합의는 문서로 할 수 있지만 실제 핵무기와 핵시설을 해체하고 폐기하는 기술적인 비핵화 과정은 결코 속전속결로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란 시간이 걸리며, 이런 시간적 지체는 불신과 긴장관계를 오래 유지해온 미국과 북한 사이에 예기치 않은 돌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미묘한 시점에서 미국 정부의 최고 자문을 맡은 핵과학자 시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북한 비핵화의 기술적 문제를 포함하여 비핵화 로드맵 보고서를 제시하고, 이게 미국 정부와 의회에 열람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는 최장 15년이 걸릴 것이라는 요지의 이 보고서는 미국정부로 하여금 단계적 비핵화에 유연하게 접근하는 계기로 작용할지 모른다.
또한 이 보고서는 올해 남북정상회담과 미·북간 비핵화협상 등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은 후에 작성됐다는 점에서 비핵화 합의이후 전개될 후속 협상과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핵화 합의는 문제 해결 시작점
지난 5월 28일 이 로드맵 연구 보고서를 공표한 기관은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의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이다. 연구를 주관한 해커 박사는 2004~2010년 동안 북한 핵시설을 4차례 방문하여 핵연료와 우라늄농축 시설을 직접 확인한 미국의 유일한 핵과학자다. 특히 그는 최초의 핵무기를 제조한 알라모 국립무기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소련 해체 비핵화 협력 사업에 참여한 경력을 갖고 있다. 해커 박사의 로드맵 작성을 보좌한 로버트 칼린은 CIA와 국무성에서 정보 분석관으로 북한을 30번 이상 방문한 인물이다.
헤커 박사는 로드맵과 관련하여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와 핵시설 및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최장 15년이 걸릴 것이며, 가장 위험한 부분을 먼저 처리하고 난 다음 순차적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기술적으로 단계적 핵 폐기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주목된다.
해커 박사는 북한 비핵화 대상이 10여개의 핵시설, 수백동의 건물, 수천 명의 과학자 및 엔지니어 등 3분야로 분류하고 이들 시설을 완전히 제거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데 15년이 걸린다고 본 것이다.
로드맵의 단계를 보면, 1단계로 핵무기 봉인하고 미사일 실험을 중지하는 등 핵무기 관련 군사적 산업적 개인적 활동을 중지시키는데 1년이 소요된다. 2단계로 핵시설과 무기를 축소하는데 최대 5년, 3단계로 핵관련 공장과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거하는데 최장 10년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하나의 핵 공장을 놓고 볼 때 방사능물질을 제염· 처리· 해체하는데 10년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해커박사의 주장을 들어보면 비핵화에 원칙적인 합의를 했더라도 그 실행과정에서 만만찮은 장애물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군사용과 민간용 원자력 시설을 분리해서 처리하는 문제가 있다. 해커박사의 로드맵은 민간에 전력을 공급하거나 의학용 동위원소 생산용 원자로를 모두 폐쇄하려 한다면 북한은 반발할 것이다. 이런 시설은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체제로 들어오면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를 둘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핵과학자와 엔지니어 처리문제 주목
해커 박사가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핵무기와 미사일 제조에 동원되었던 과학자 및 엔지니어 처리문제다. 그는 경수로 원자로 같은 핵시설을 허용해서 이들 원자력 인력이 재활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핵무기 해체는 핵무기를 제조한 북한 기술자들로 하여금 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방안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또 해커 박사가 비핵화 보고서 말미에 제시한 항목은 ‘수출’ 규제다. 농축우라늄 등 핵물질 밀반출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핵 기술 지식의 유출도 미국에게는 신경 쓰이는 일임이 분명하다.
이 로드맵을 보면서 15년 동안 들어가는 해체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하는 것이 당면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해커의 보고서도 단계마다 소요되는 재정 부담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반가운 비핵화 합의는 바로 비용 청구서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태도로 볼 때 과거 한반도에너지기구(KEDO) 재정분담 방식과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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