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1 11:26:01 게재
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다. 세계의 지성 사회가 그렇듯이 한국 지식인들도 10월이면 설렘이 부푼다. 올해는 누가 노벨문학상을 받을까?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은 올해도 그저 미·영·불 등 코큰 사람들에게 돌아가겠지 하다가도 혹시 중국이나 일본 사람이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 겸 부러움이 생기고.
올해 문학상은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받았다. 이름만 보고는 일본인이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 태생이지만 영국에서 자라고 귀화해서 영어로 소설을 쓰는 영국 시민이다.
'남아있는 나날들'의 작가가 그였는데, 그의 이름은 잊어버렸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에마 톰슨과 안소니 홉킨스의 심리극 장면만 기억에 남았다.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수상 충격이 '1960년대 청년들'에겐 아직 생생하다. 고은 시인은 매년 수상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다 말 것인가.
올해는 노벨생리·의학생에 관심이 갔다. 제프리 홀(72), 마이클 로스배시(73), 마이클 영(68) 등 미국인 과학자 3명이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런데 관심을 끈 것은 수상 과학자들의 면면(面面)이 아니라 그들의 연구 업적이다. 이들은 동식물의 생체리듬을 조절하여 태양이동과 일치시켜가는 단백질의 작용을 규명했다고 한다.
나이 탓인가. 커피를 몇 잔씩 마셔도 잠만 잘 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저녁에 커피 한잔을 마셔도 새벽까지 잠이 안 올 때가 허다하다.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 결과가 밤에 잠이 잘 오도록 하는 수면위생의 발전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한국은 노벨상에 대한 관심과 달리 인연은 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전부다.
반면 일본의 노벨상 수상 연혁은 길고 분야도 다양하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가 물리학상을 수상하여 패전의 나락에 빠졌던 일본인의 자존심을 고양시킨 이래로 23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서경배과학재단, 젊은 과학자들 지원
또 가즈오 이시구로처럼 일본 태생으로 수상 당시 다른 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 3명을 포함하면 26명이다. 일본은 경제학상 수상자만 없다. 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부문에서 수상자를 배출했다. 과학 부문에서 무려 20명의 수상자를 배출했고, 특히 물리학상 수상자가 9명이나 된다. 일본 과학의 기초체력이 얼마나 탄탄한지 짐작할 수 있다.
노벨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평화상이나 문학상을 뛰어넘어 과학 분야로 향하는 날이 언제나 올까. 국내외에서 연구에 전념하는 과학자들이 포진해 있는 한국 과학계가 노벨상의 불모지대로 오래 남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이런 시점에서 기초과학 분야에 노벨상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있는 게 든든해 보인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사재를 기부해서 만든 '서경배과학재단'이 지난 달 생명과학 5개 분야 학자 다섯명을 뽑아 지원에 나섰다.
강찬희(서울대 교수) 김도훈(메사추세츠대 의대 교수) 이정호(KAIST의과학대학원 교수) 임정훈(울산과학기술원 교수) 최규하(포스텍 교수) 등 모두 젊은 과학자들이다.
서경배과학재단의 기금은 3000억원이다. 그러나 서경배 회장은 작년 재단 창설 때 기금을 1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그때 서 회장은 재단 운영 철학과 비전을 천명했다. 요지를 보면 다른 재벌 기업 연구소와 사뭇 다르다.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소망을 이루고 싶다. 생명과학 기초 분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혁신적 과학자를 매년 3~5명씩 선정해 각 과제당 5년 기준 최대 2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겠다. 아모레퍼시픽과 관련된 (단기적) 연구는 하지 않는다. 재단이 지원한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는 영광의 순간에 함께 있고 싶다."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다"
서경배 회장은 지원금 수여식에서 노벨상 수상 한국인 과학자가 나올 때까지 30년이 걸리더라도 지원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독창적인 연구를 주문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천외유천(天外有天)의 문구가 인상적이다. 직역하면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다'이지만 그 함의는 인류의 손이 닿지 않는 과학 지식을 찾아내자는 격려인 듯싶다.
이들 5명 중에, 그리고 이 재단이 계속해서 선정할 새로운 과학자들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그러나 누가 아랴. 우리 인간사가 천외유천(天外有天)의 세계이다. 서경배과학재단의 손이 닿지 않은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서경배과학재단의 파종이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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