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5 11:33:20 게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이재웅 '다음' 창업자 사이에 벌어진 '스티브 잡스와 이해진의 비교 평가' 논쟁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김 위원장은 재벌 저격수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시민운동가로서 맹렬히 사회운동을 벌였던 경제학자다. 이재웅 창업자는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해 IT벤처 1세대의 선구자였고, 지금은 청년 창업을 육성하는 '소풍'의 대표로 있다. 그래서 그들의 논쟁은 더욱 관심을 끌었다.
논쟁의 발단은 7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일간지 인터뷰를 통해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에게 '비전이 없다'는 비판을 가하면서 점화됐다.
김 위원장의 인터뷰 요지는 이렇다.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는 독재자 스타일의 최악의 경영자다. 그러나 잡스는 미래를 봤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잡스를 미워했지만 존경했다. 네이버 정도의 기업이 됐으면 미래를 보는 비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해진 전 의장은 잡스처럼 우리 사회에 그런 걸 제시하지 못했다. 짧은 대화를 나눴지만 그런 점에서 아쉬웠다."
이를 보고 이재웅 대표가 10일 페이스북에 이해진 창업자를 거들며 김 위원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상조 위원장이 앞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아무 것도 없이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동료 기업가로서 화가 난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말 펀치를 주고받은 후 이들 두 사람이 벌인 일이다. 두 사람의 말 펀치교환을 놓고 SNS에서는 찬반논쟁이 벌어졌다.
감정 배제, 헝클어진 사안 수습 노력
먼저 이재웅 대표가 10일 한발 후퇴하여 "오만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했다. 김상조 위원장의 표현도 부적절했지만 내 표현도 부적절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러자 김상조 위원장이 11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관련단체 간담회에서 이해진 창업자에 대한 자신의 평가 발언이 부적절했음을 시인하면서 한발짝 물러섰다. "이재웅 창업자가 정확하고 용기있는 비판을 해준 것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명심하고 자중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인간관계를 게임으로 볼 때 관심은 누가 이겼느냐에 쏠린다. 이재웅 대표와 안철수 대표의 공격에 김상조 위원장이 고개를 숙였다는 신문보도가 나왔다. 안철수 대표까지 이 논쟁에 끼어들면서 기업적폐 개혁의 책무를 진 문재인정부의 고위공직자로서 김상조 위원장이 정무적 상황 판단을 해서 뒤로 한발 물러섰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논쟁의 전개과정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볼 수 있다. 바로 김상조 위원장과 이재웅 대표가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을 찾아 헝클어진 사안을 수습하려고 노력을 기울인 점이다. 기업인이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비판하기는 어렵고, 비판을 받아 좋아할 공직자도 사실 없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잘 못된 것은 고치고, 감정에 치우친 것은 이성으로 바로잡는 태도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번 논쟁은 인터넷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에 있는 네이버를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재벌총수의 부당하고 불공정한 횡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기업가치 5조원 이상 기업을 공시대상기업으로 지정하여 규제하는 이 제도는 나름 정당성을 갖고 있다.
절제와 균형은 민주주의 윤활유
그러나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나 이재웅대표 같은 인터넷 분야 기업인들은 인터넷의 핵심가치는 공유와 개방인데 정부가 이를 규제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소통의 폭을 넓히는 의미가 있는 논평을 남겼다. "이번 논란이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나 정보통신기술의 미래를 위해 생산적인 결론을 내리는 기회로 승화되길 바란다."
요즘 북한의 핵무장 고도화로 나라는 흔들리는데 정치권은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네 정파의 이득을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고 있다. 김상조-이재웅의 논쟁에서 절제의 미덕이 발휘되는 것은 요즘 정치권력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어서 보기 좋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절제와 균형은 민주주의의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내일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어컨과 글로벌 보일링 (0) | 2023.08.09 |
---|---|
노벨상 씨를 뿌리는 사람 (0) | 2023.07.26 |
허리케인 '하비'와 기후변화 논쟁 (0) | 2023.07.26 |
핵과 미사일의 8월, 그리고 대통령 (0) | 2023.06.05 |
탈원전, 디테일이 필요하다 (0) | 2023.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