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5 11:54:33 게재
전 세계인이 도널드 트럼프가 1월 20일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 국제 사회가 어떻게 요동칠지 주목하고 있다. 기대보다는 걱정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대만인(臺灣人) 2300만 명은 기분이 붕 떠 있을 것 같다. 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10분 간 전화 통화를 했으니 말이다. 대만 총통은 지난 37년 동안 미국 대통령(당선자 포함)과 전화 통화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대부분 대만인들도 기분 좋았을 법하다.
미국과 중국이 국교정상화를 한 것이 1979년이다. 이때 두 나라가 합의한 대원칙은 '하나의 중국'이다. 대만은 중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1개의 성(省)이기 때문에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중국의 조건을 미국이 수용함으로써 역사적 미중(美中)수교가 이뤄진 것이다. 대만은 '중화민국'이란 이름을 잃고 국제사회에서 국가로서의 공식적인 지위를 하나씩 잃었다. 유엔 회원국 자격도 상실했고 그동안 누려온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의 지위도 중국으로 넘겨줘야 했다. 한마디로 처절했다.
미중 국교정상화를 신호로 대부분 국가들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한국도 1992년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는 단교했다. 지금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는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몇개 국가밖에 없다.
대만은 이 고립을 탈피하는 게 꿈이다. 존재감을 못 찾던 대만이 '트럼프의 10분 통화'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니 "역사적"이란 대만 중앙통신의 논평이 대만인들에겐 실감나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어떤 사안(事案)을 놓고 좋아하는 쪽이 있으면 반드시 기분 나쁜 쪽도 있게 마련이다. 트럼프와 차이잉원의 통화에 기분이 크게 상한 것은 중국 정부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아시아 정책, 특히 어떤 대 중국정책을 펼칠 지를 예의주시하는 중이었다. 특히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을 폐기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으로 중국은 미중관계를 희망적으로 봤다.
"왜 우리가 하나의 중국 지켜야 하나?"
그런데 트럼프 당선자가 6명의 미국 전임 대통령이 절대 안하던 '짓'을 한 것이다. 트럼프-차이잉원의 통화는 중국에겐 의외의 일격이었다. 미국은 대만과 공식외교관계를 끊었지만 '대만관계법'을 제정하여 대만의 안보 불안을 해소해줬고, 대만에 첨단 무기를 판매하고 사실상 동맹수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중국의 핵심 국익이고, 대만관계법은 미국에게 중국 견제의 핵심 축이다. 미중 관계는 이와 같은 틀 안에서 미국에서 다섯 번의 정권교체가 있는 동안에도 안정적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전화는 차이잉원 총통이 트럼프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먼저 건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통화가 알려지자 중국 학계와 언론은 "중국에 대한 도전"이라고 트럼프를 공격했다. 중국 외교부도 발끈해서 미국과 대만을 동시에 비난했다. 중국의 반응이 민감해지자 트럼프 측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는 방송 인터뷰에서 "의례적 통화에 불과하다"고 진화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전화 한 통화가 정책을 바꿀 수는 없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당선자는 트위터에서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를 하거나 남중국해 한가운데 군사시설을 만들 때 우리에게 미리 물어봤냐"고 반박했다. 트럼프는 지난 1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무역에서 우리에게 양보하지 않는데 왜 우리가 '하나의 중국'을 지켜야 하나"라고 중량급 펀치를 날렸다.
'샌드위치 코리아'로 곤경에 처할 수도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본질적으로 반하는 대중 외교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다수 미국 전문가들의 견해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81년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대만과의 관계정상화를 하겠다고 표명하고 취임식에 대만 대표를 초대하기도 했지만 '하나의 중국'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스타일로 볼 때 취임 후 기존 외교 관행을 무시할 가능성이 있다. 그가 '대만카드'를 거침없이 꺼내 휘둘러댄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중국은 모택동 시대나 등소평 시대의 나라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공격적인 중화민족주의가 꿈틀거리는 국가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의 비즈니스 스타일은 바로 한국에 큰 시험이 될 수 있다. 첫째, 북한 핵문제를 놓고 트럼프가 의외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상상이 가능하다. 둘째, 트럼프가 '대만카드'를 꺼내듦으로써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코리아'로 곤경에 처하거나, 미중 거래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명철한 국가 리더십이 긴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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