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김수종 칼럼] 탄핵 표결 이후

구상낭 2023. 4. 19. 00:05

2016-12-07 11:41:26 게재

 

어제 재벌 총수 9명이 국회 청문회 증인석에 앉아 하루 종일 국회의원들의 질책어린 질의에 답변하는 광경은 한국 정치사에 특이하게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TV화면을 통해 청문회 증언 장면을 보면서 얼핏 28년 전 국회 일해재단 청문회가 떠올랐다. 두 가지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똑 같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증인석에 앉은 총수들은 일해재단 청문회 당시 같은 자리에 앉았던 재벌들의 2세가 많았고, 이들은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거액의 돈을 내놓은 1세대 정경유착의 재판(再版)이었다. 한 세대가 흘렀건만 행태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은 권력이나 기업의 속성으로 치부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기라성 같은 재벌총수들을 증인으로 부른 청문회가 뿌렸던 요란스러운 화제와 뉴스보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머리를 점령했다. 바로 '대통령 탄핵' 문제다. 2004년 한 번 경험했지만 대통령탄핵은 국정 전반에 큰 충격과 공백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3일 야당과 무소속 의원 171명이 서명·제출한 '대통령(박근혜)탄핵소추안'은 되돌리기 어려운 초읽기에 들어갔다. 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탄핵안을 표결처리한다. 탄핵안 발의와 처리를 놓고 여든 야든 나름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뜨거운 촛불 민심으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여론을 의식한 새누리당도 자유투표로 표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탄핵에 동조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늘어났으니 탄핵안 의결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 셈이다.

대통령탄핵안이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면 박근혜대통령의 권한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정지된다. 대통령이 존재하되 기능을 잃게 된다. 국가 리더십의 공백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한달 이상 계속된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퇴진과 탄핵 요구 촛불시위를 겪으며 사람들은 리더십의 공백에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탄핵 의결은 당장 두어 가지 도전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질 것이다.

'황교안 대행' 순항할 수 있을까

첫째, '황교안대통령권한대행' 체제가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탄핵안이 가결되면 10일부터 '황교안 권한대행'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 대통령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야당은 황 총리를 '박근혜 아바타'라며 끌어내리려 할 것이다. 황 총리가 사퇴하지 않는 한 그를 끌어내릴 법적 근거는 없어 보인다.

대통령권한대행체제를 둘러싼 여야의 갈등으로 국정이 중심을 잃고 방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촛불시위가 '황교안총리 권한대행'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선다면 정국은 카오스 상태가 될 것이다.

둘째, 촛불 시위는 탄핵 의결로 수그러들 것인가. 세계의 언론이 평가하는 평화적인 촛불시위가 대통령탄핵안 발의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촛불시위의 구호는 '하야'에서 '퇴진'으로 그리고 '탄핵'으로 이어졌다. 탄핵안이 의결되어도 대통령은 권한만 정지되고 청와대에 남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에서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 및 정진석 원내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에 대해 "가결이 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일단 탄핵안이 의결되어도 사퇴하지 않고 헌재심판을 기다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탄핵 의결 이후 정국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을 것 같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행위에 분개하면서도 탄핵 이후 국정에 깊은 불안감을 느낀다. 수출이 감소하는 등 경제 전망이 어둡기만 한데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서민들에게 너무 심각하다.

여당은 참회하고 야당은 겸손해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한 달 동안 세계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며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당선자는 1979년 이래 처음으로 대만의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함으로써 미중관계에 새 이정표를 세우려 하고 있다. 1972년 확립한 닉슨 대통령의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미중갈등이 커지면서 동아시아 정세가 불안해질 공산이 높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통상보복이 거세지고 있는 판이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으나 국가리더십이 고장난 한국은 대응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정을 구겨놓았지만 누군가 수습해서 올바로 펴놓아야 한다. 촛불에서 탄핵 의결로 이어지는 지금의 정국은 혁명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 수습은 법과 정치적 결단과 협상이란 합리적 틀로 풀어가야 한다. 그게 촛불 민심이 아닐까. 이제 정국을 풀어나갈 책임은 국회에 있다. 특히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집권 가능성이 높아졌으니 그만큼 책임감도 느껴야 한다. 여당은 참회하고 야당은 겸손해야 한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