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3 11:26:04 게재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비선(秘線)실세 국정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씨가 그제 검찰청 안으로 들어서면서 기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겹겹이 둘러싼 취재진에 휩쓸려가면서 한 말이니 거의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결과적으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언론이 보도한 최순실 국정 농단의 큰 줄기는 법률과 행정 체계를 헝클어트린 그림자 실세 권력이라는 점이다. 재벌들의 돈을 빨아들여 미르 및 K스포츠 재단 설립을 조종하고, 국가기밀에 속하는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과 문서를 발표에 앞서 은밀히 전달받아 고치고,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비롯하여 최씨의 사적인 업무에 연관된 정부의 공식 채널을 모두 흐트려놓았다는 게 요지다. 나라의 훗날을 위해서도 검찰 수사로 최순실 비선 국정 농단의 실체가 있는 그대로 밝혀졌으면 싶다.
국민을 더욱 황당하게 만든 것은 지난 40년 동안 뒷담화 수준에서 나돌던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 가족과의 40년 특수 관계가 조명되었다는 점이다. 시정의 재미있는 화제가 됐지만 종교적 관계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보도에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최순실 비선 국정농단은 박 대통령을 헤어나기 힘든 나락으로 빠뜨렸으며 국민으로 하여금 리더십의 실종이란 황당한 현실을 맞게 만든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9.2%로 떨어졌다. 2일 보도된 내일신문과 더 오피니언의 11월 정례 공동 여론조사 결과다. 이 여론조사는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하야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얼마나 동의 하는가"라는 설문을 던졌다.
"매우 동의한다"에 42.6%, "어느 정도 동의한다"에 24.7%의 응답이 나왔다. 응답자의 67.3%가 대통령의 하야에 동의한다는 얘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놓고 대통령이 사과 방송을 한 이래 지지 여론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지금 정국은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지고 있다. 대통령은 통치의 권위를 상실했고, 청와대의 기능이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야권 대선후보들도 '하야' 요구
나라 전체에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 활약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총리후보로,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경제부총리로, 박승준 전 가족부차관을 국민안전처 장관에 지명하는 개각을 발표했다.
우병우 민정수석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그리고 문고리 3인방으로 알려진 측근 비서관 3명을 청와대에서 내친 대통령으로선 개각이 고뇌의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김병준 총리후보 지명은 과거 같으면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카드였다. 고독함과 다급함 그리고 국면 전환의 절박감에서 나온 조치인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개각으로 대통령의 위기가 쉽게 극복될 것 같지 않다. 첫째 야당의 협조를 얻기 힘들고, 둘째 박근혜 대통령이 마음을 비우고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야권의 대권 잠룡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통령의 하야를 공개 요구했거나 언급했다. 안철수 의원은 개각을 비판하며 "오늘부터 당신은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마법과 같은 인기도를 유지했다. 아버지의 유산과 TK세력, 그리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층의 결집이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선거의 여왕이 되어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총선 이후 박 대통령의 권력은 레임덕에 들어섰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최순실 비선 국정농단 행태가 권력누수를 촉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는 일이 만만치 않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제 최순실 구속수사와 상관없이 정국은 대통령의 거취 문제로 요동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마치 40년 전 미국에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왔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미국 워터게이트사건 연상케 해
이런 정국 혼돈이 국민에게 큰 부담이다. 대통령은 이 위기의 본질을 겸허하게 바라보며 그 매듭을 풀어야 한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은 야당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순전히 대통령과 최순실씨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사단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여당을 상대로, 야당을 상대로 현재 문제가 된 이슈의 본질을 솔직히 털어놓고 수습의지를 밝히고 협조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살아온 내력과 성격으로 보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의 자세로 모든 것을 바닥에 내려놓지 못한다면 하야나 탄핵 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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