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리튬 전쟁

구상낭 2022. 11. 8. 12:28

내일신문 2010-09-08 20:45:56

 

지난 8월 말 이명박 대통령과 새까만 더벅머리의 인디언이 포옹하는 뉴스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 대통령에서부터 이름도 생소한 조그만 섬나라의 총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수많은 국가 정상이 청와대를 찾아와 한국 대통령과 회담한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주는 나라의 정상이 오면 온 나라가 떠들썩하지만, 한국에 경제 원조를 요청하거나 저 멀리 작은 나라의 정상이 오면 뉴스에 잘 나오지도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포옹하고 극진히 대접한 그 인디언은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볼리비아가 남미 국가 정도로 알지만 어디쯤에 붙은 나라인지는 잘 모른다. 그 동안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고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남미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분지에 걸쳐 있고 남한의 10배가 넘는 땅에 약 1천만 명이 산다. 인구 중 인디언 원주민이 55%, 메스티조(인디언과 백인혼혈)가 30%, 백인이 15%로 인디언이 다수다. 이 나라의 특징을 그나마 기억해보라면 마약과 쿠데타가 스쳐지나가는 정도가 아닐까. 스페인 치하에서 독립한 이후 180년 동안 무려 200번의 쿠데타를 경험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산업은 낙후해 국민 60%가 빈곤층이다.

 

2005년 이 나라에 큰 정치 지진이 일어났다. 에보 모랄레스가 역사상 처음 인디언 원주민으로서 대통령에 선출된 것이다. 그는 원주민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여러 가지 사회주의 정책을 실행했고, 대외적으로 반미 노선을 취했다.

모랄레스의 좌파 노선을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를 껴안게 된 이유는 뭘까?  바로 ‘리튬’이라는 희귀 광물 때문이다. 대통령의 형님 이상득 의원까지 나선 자원외교가 일차 결실을 맺어 청와대에서 열린 한·볼리비아 정상회담에서 리튬개발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지금 세계는 리튬 광산을 놓고 자원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전쟁의 한복판에 볼리비아가 있다. 한국 일본 프랑스 등 전자산업의 선두 주자들이 해발 3천5백 미터가 넘는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로 달려가 머리를 조아린다.

리튬은 지난 세기까지 관심 대상이 되는 물질이 아니었다. 리튬은 세 번째 가벼운 원소이고 금속 원소로는 제일 가볍다. 비중이 물의 절반밖에 안 된다. 의학계에서는 신경안정제의 원료로, 군사적으로는 수소폭탄의 원료로, 또 도자기 유리 또는 항공기 엔진 소재로 제한적인 분야에서만 사용됐다.

 

그런데 리튬이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 이유는 배터리의 전극(電極) 재질로서 다른 어떤 물질도 따를 수 없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백금도 전극 재질로서 우수하나 무게가 훨씬 가벼운 리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PC 휴대전화기 디지털카메라 등 전자 제품의 에너지원으로서 리튬 배터리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21세기의 추세가 된 전기 자동차 또는 하이브리드카는 재충전 리튬이온 배터리가 필수적이다. 석유자원의 고갈과 이산화탄소배출 제한으로 세계는 전기 자동차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자동차 제조국가들은 리튬 확보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리튬 전쟁에 불을 댕긴 건 중국이다. 장차 세계 제1의 자동차 소비국이 될 중국이 리튬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석유자원 매장이 불평등하듯이 리튬광산도 매우 편중되어 있다. 추출 가능 매장량을 보면 볼리비아가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우유니’ 염호(鹽湖)에 집중되어 있다. 나머지 매장량도 칠레 중국 아르헨티나 호주 미국의 사막지대 염호로 제한되어 있다. 미국도 리튬에 관한한 자원 부국이 결코 아니며, 리튬 광산 확보에 민감하다. 이런 판이니 볼리비아가 ‘제2의 사우디’라고 불리는 것이다.

 

에너지 자원의 미래는 심각하다. 지금 세계는 석유 이후의 에너지를 찾아 전전긍긍하는 꼴이다. 원자력도 우라늄광이 있어야 하고, 태양열과 풍력 같은 청정 에너지원도 이를 저장했다 쓸 배터리의 소재, 즉 리튬이 있어야 한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살 길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경제 외교이다.

'내일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배추값을 올렸을까?  (1) 2022.11.08
중국은 군사 초강대국으로 간다  (0) 2022.11.08
Globish가 뜬다는데  (1) 2022.11.07
이카루스의 날개  (0) 2022.11.07
이건희, 태양을 바라보다  (0) 2022.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