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15 22:25:30
이카루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들어준 밀랍 날개을 달고 크레타 섬을 탈출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무 하늘 높이 떠오르지도 말고 너무 바다에 붙어 날지도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카루스는 하늘로 떠오르자 그 비상에 심취한 나머지 아버지의 충고를 잊어버리고 하늘 높이 날았다. 이카루스는 태양 너무 가까이 접근했고, 밀납 날개가 녹아내리는 바람에 바다에 추락해서 죽었다.
나로호 발사 실패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의 날개’를 연상했다. 우주를 향한 인간의 꿈과 이카루스의 밀납 날개는 숙명적인 관계인지도 모른다.
구 소련은 1957년 5월 4일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쏘아 올려 미국을 경악케 하면서 우주 경쟁의 테이프를 끊었다. 까마득히 먼 53년 전의 일이다.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1958년 항공우주국(NASA)를 창설한 이래 우주 경쟁에 나서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를 발사하여 우주인 닐 암스트롱을 달 표면에 착륙시켰다.
그 당시 모깃불을 펴놓고 동네에 1대 있을까 말까한 흑백 TV에 둘러 앉아 달착륙선 해치를 열고 사다리를 타고 달 표면으로 내려가는 암스트롱의 모습을 보며 옥토끼는 어떻게 될까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한여름 밤의 기억이 새롭다.
1960년대는 인터넷도 없고 텔레비전 뉴스도 시차를 두고 방영되던 시대였지만, 또 꽁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이 수두룩한 연평균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였지만, 그리고 대한민국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는 건 공상처럼 들리던 시대였지만, 청소년들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우주여행의 꿈을 키우던 시대였다. 지금 나로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학 기술자들 중에는 아마 인간의 달 착륙 광경을 바라보던 청소년 과정을 거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로호 발사체 기술은 미국 같은 항공우주 선진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가내공업’수준일지도 모른다. 그 동안 우주개발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주 정거장, 우주왕복선, 외행성계 탐사 위성이 발사되어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경이로운 우주의 모습이 사진으로 전송되어 오고 있다. 사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어떤 기술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항공우주 기술 분야는 미국 등 선진국의 기술 쇼비니즘이 심하다고 한다. 이런 환경 아래서 우리나라의 인공위성 프로젝트는 10년 안팎의 짧은 역사를 안고 있다. 가까스로 러시아와 발사체 기술 계약을 맺었지만 그게 불평등할 뿐 아니라 불리하기 이를 데 없다. 바다에 추락한 발사체를 건져 올리는 것도 러시아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니 할 말이 없다.
한국의 우주항공 산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나로호 발사 실패로 우주강국의 서클에 못 들어간 것을 한탄할 일은 아니다. 우리 기술 능력의 총체를 냉정하게 말해줄 뿐이다. 아기가 걸음마를 하려면 수없이 넘어지고 무릎에 상처가 난다. 미국을 비롯하여 우주 선진국들도 이렇게 넘어지면서 일어섰다. 수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와 우주 비행사가 하늘에서 희생했다.
하지만 두 번의 나로호 발사 실패를 무조건 관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실패의 원인과 책임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나로호 발사는 5,000억 원의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된 프로젝트다. 우주과학기술이 국가의 미래를 열어갈 분야라면 국민의 마음에 불편함이 남는 실패가 연속되어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성에 커다란 장애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점검뿐만 아니라 행정적 문제가 없는지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나라도 국가프로젝트에 행정과 정치가 생리적으로 작용하게 되어 있다. “과학논리는 경제 논리 앞에 고개를 숙이고 경제 논리는 행정 논리 앞에서 쪽을 못 쓰며, 행정 논리는 정치 논리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어떤 정치 논리도 국민 정서에 제압당한다.”는 농담을 웃고 넘겨야만 할까.
나로호 발사 실패 후 과학기술계에 정통한 한 언론인이 나에게 ‘과학자들의 배짱’을 아쉬워하는 말을 했다. 문제를 알면서 용기 있게 개선해나가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뜻인 듯했다. 또 어느 교수가 “로켓은 결코 정치적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학 법칙에 의해 날아간다.”는 말을 남겼다. 모두가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교육과학부 장관과 대변인이 인공위성 발사 실패를 설명하는 모양새는 아무리 보아도 어색했다. 우주강국이 되려면 ‘이카루스의 날개’를 교육행정에서 분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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