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Globish가 뜬다는데

구상낭 2022. 11. 7. 12:31

2010-07-06 23:17:26

"Speak Globish?"

6월 21일자 뉴스위크가 커버스토리로 다룬 기사의 제목이다. 영어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번뜩 감이 잡힐 것이다. ‘Globish’는 ‘Global’과 ‘English’의 합성어로서 글로벌 언어로서 영어의 위상을 말해주는 신조어(처음 사용된 것은 1997년이라고 함)임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뉴스위크 기사에서 얘기하는 글로비쉬는 미국인이나 영국인들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표준 영어를 뜻하지 않는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특히 제3세계 사람들이 쓰는 영어를 말한다. 인터넷과 글로벌 미디어가 출현한 후 비즈니스를 비롯한 각 분야의 접촉에서 모국어가 서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끼리의 의사소통이 더욱 필요해졌고, 결국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영어가 이런 수요에 맞게 변하면서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아간다는 것이다.

 

글로비쉬는 기본적으로 영어이지만 변형된 영어라고 할 수 있다.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표현이 쉬워야 하고, 단어 수도 제한적이다. 또 인터넷과 모바일폰(mobile-phone)의 특성에 적응해서 영어가 본래 가졌던 형식과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영국과 미국 사람들이 말하고 쓰는 방식 보다는, 예를 들면 한국인과 중국인이 소통하는 영어 또는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이 소통하는 영어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글로비쉬를 하나의 언어 단위로서 연구하고 체계화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서 1,500개의 단어를 선정해서 공부하는 교재도 개발되고 있다. 영어의 어휘는 약 50만 단어로 방대해서 이를 습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글로비쉬가 체계화되고 발전되면 영어를 모국어로 삼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참 편리할 것 같다.

 

영어는 2,000년 전 로마 시대에는 영국 섬 주민의 언어였다. 16세기 쉐익스피어 시대에 영어가 발전하기 시작하여 17세기를 거치면서 세계로 보급되었다. 영어의 전파는 소위 글로벌 파워로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영향과 함께, 20세기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등장한 팍스아메리카나에 의해 가속됐다.

20세기에 냉전체제 붕괴에 의한 세계화 이후 영어는 외교, 비즈니스, 문화 교류의 통용 언어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은 세계어로서 영어의 위치를 더욱 굳혀줬을 뿐 아니라 영어 자체를 변화시키는 촉매 작용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가 글로비쉬의 등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영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사람은 약 4억 명이다.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13 억 중국인 숫자 보다는 적지만, 영어를 제2외국어로 삼고 공부한 인구는 40억 명에 이른다. 미국과 영국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나라 사람들도 영어를 배우고 쓴다. 즉 영어와 앵글로 국가(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디커플링이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인 영어 사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글로비쉬의 등장은 공식 언어의 위기로 받아들여진다. 영어가 오염됐다는 것이다.  또 ‘디카페인 영어’라는 별명도 얻고 있다. 카페인을 빼고 마시는 커피처럼 영어의 진수가 빠진 말이라는 것이다.

영어의 확산은 시대 조류를 탔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지만, 언어로서 영어가 지니는 자유정신도 큰 몫을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영어는 공식화해서 규제하는 언어가 아니라 매우 민주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즉 영어를 지배하는 것은 사용자이고, 사용자가 계속해서 영어를 재창조하고 있다는 견해다.

 

그러면 한국어라는 모국어와 그 표현 수단인 한글을 가진 우리에게 ‘글로비쉬’의 전파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일견 영어 공부에 애를 많이 쓰면서도 효과가 적은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나쁠 것도 없어 보인다. 글로벌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는데 훨씬 편해질 법하다. 그리고 비즈니스맨이나 여행객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글로비쉬 사용권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맛과 언어는 문화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언어생활의 변화는 기존의 틀을 그냥 둘 것 같지 않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은 지식 정보의 유통 규모와 속도를 상상할 수 없이 바꾸고 있다. 같은 한글 표기의 우리말이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쓰는 젊은이들의 언어는 기성세대의 것과는 달라지고 있다. 굉장한 변화를 잉태하고 있다.

 

영어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과목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어 사용 능력은 과거와는 상상할 수 없이 변해가고 있다. 미국 가서 공부할 고급 영어가 아니라 제3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글로비쉬에는 쉽게 동조할 여건이 성숙된 건 아닐까.

 

13억 중국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중국어를 배워야 할 것 같지만, 중국도 지금 영어 배우기 열풍에 빠져 있다고 한다. 중국인 5,000만 명이 ‘크레이지 잉글리쉬’라는 프로그램에 등록해서 영어를 배운다. 그들도 영어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소통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디카페인 커피가 사람들의 소비 성향의 한 갈래인 것처럼, 글로비쉬도 21세기 세계의 소비 성향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인터넷이 발전하고 거기에 모바일폰이 결합되면서 우리의 언어생활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젊은이들이 즐겨 보는 정보는 신문보다는 인터넷에서 얻어진다. 인터넷 게시판은 욕설 뿐 아니라 뿌리를 알 수 없는 말들로 채워질 때가 많다. 어쩌면 기존의 표준 한국어와 인터넷 언어가 아슬아슬한 경계를 이루며 공존하는 공간이 인터넷이다. 언젠가 글로비쉬도 여기에 본격적으로 섞일 것이다. 

 

언어는 문화의 흐름이다. 이 흐름을 품위 있고 아름답게 가꾸고 유도해 나가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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