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명암

구상낭 2022. 12. 20. 12:22

내일신문 2014-07-01 15:37:52

 

호주 남쪽에 위치한 타스마니아 섬은 우리가 사는 북반구 문명권에서 볼 때 지리적으로 격리된 곳이다. 그렇지만 섬이 만만치 않게 크다. 넓이가 6만5천㎢로 남한의 3분의 2 정도인데, 제주도 인구보다 적은 50만 명의 사람만 산다.

이런 통계와 위치만 고려해도 섬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청정하고 문명의 간섭을 덜 받았을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부지런한 한국 관광객들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타스마니아의 풍광 사진을 보면 그 자연환경이 순수함을 알 수 있다.

빙하지형이 그대로 남아 있고, 온대우림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으며, 독특한 동식물이 살며 그 다양성이 풍부하다. 2만 년 전 동굴 속에 살았던 호주 원주민의 유적이 잘 보존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는 1982년 호주 정부의 요청에 의해 타스마니아 섬의 일부를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했다. 복합유산은 보전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함께 혼재된 곳을 말하며, 중국의 태산(泰山)도 이 범주에 속한다. 타스마니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면적은 약 1만6천㎢이다. 타스마니아 섬 전체 면적의 거의 25%에 이른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개발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지역의 기업인들은 자연유산이 반갑지 않다. 타스마니아의 원시림을 자원으로 이용하는 목재산업은 세계유산 등재가 원수 같다. 세계유산 등재를 변경할 수 있는 방법은 정치인을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다. 호주는 작년 총선에서 야당인 자유당이 승리했고, 타스마니아 목재 산업은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토니 애벗 총리는 지난 6월 하순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타스마니아 세계유산 등재 면적 중 일부를 해제해달라는 요청안을 내놓았다. 해제요청 면적은 740㎢로 서울 정도의 면적이다. 애벗 총리가 주장한 세계유산 해제 이유는 해당 지역의 산림이 이미 많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보전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도하 유네스코유산 위원회는 12분 만에 애벗총리의 요청안을 거부했다. 이유는 호주 정부 주장의 근거가 박약하고, 이 요청안을 들어주면 선례가 되어 장차 다른 나라들의 세계유산의 변경 요청을 거부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멋대로 된 독재국가였다면 유네스코 탈퇴를 위협하면서 유네스코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주는 국제협약을 존중할 줄 아는 국가여서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유네스코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세계유산의 지위 변경을 요구하는 유권자에게 할 일은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한 셈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개발이 제한되는 등 세계유산 보전에 필요한 규제를 받게 된다. 그래서 설악산은 주변 주민들의 반대로 유네스코 유산 등재 신청도 하지 못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후보를 심사하고 결정하는 세계유산 위원회의 올해 최대의 화제는 호주정부의 요청안을 거부한 결정일 것이다.

한편 한국인에게는 남한산성(南漢山城)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사실이 가장 뜻 깊은 뉴스일 것이다. 유네스코 유산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남한산성은 조선왕조의 비상시 수도로서 행정 및 군사적 기능을 발휘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한때 서울시민들의 야유회 장소로서 산성 안에 무분별하게 음식점이 즐비했던 기억이 생생한 남한산성이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되고 인류보편적인 보전가치를 지닌 곳으로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은 것은 흐뭇한 일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가 발족하고 문화유산을 등재하기 시작한 것은 1972년이다. 그러나 한국은 먹고살기에 급급했고, 정치적 상황 등으로 이런 세계적 추세에 눈을 돌리지 못하다가 민주화도 이루고 올림픽도 치루면서 국제적 지위가 호전되자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석굴암·불국사를 처음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꾸준히 등재활동이 계속되어 지금 남한산성까지 포함해서 세계유산 11곳을 갖게 되었다. 문화유산이 10곳이고, 제주도화산섬과 용암동굴계가 유일한 자연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그 아이디어가 서양인들의 머리에서 나왔다. 따라서 문화유산등재도 압도적으로 유럽 쪽에 많다. 이탈리아를 비롯해서 독일 프랑스 스페인이 세계유산 부국이다. 동양에서는 중국이 많은 세계유산을 갖고 있으며, 일본은 17곳으로 국토에 견주어 보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세계유산은 국가적으로 자랑거리고 주민의 자긍심을 키워주며, 무엇보다 관광객 방문이 많아져서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유산은 이제 약 1천 곳이 된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남발한다는 비평도 받고 있고, 나라마다 과잉 로비를 한다는 비판도 따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많아지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세계유산 등재가 되면 보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유산 등재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탁월한 문화유산이나 빼어난 자연유산에 대한 인류 보편적 가치의 보전이다. 경제적 효과는 부수적이어야 한다. 세계유산을 돈벌이 위주의 관광 유원지로 만드는 것은 문화적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