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92세 노인이 미 군사 전략을 짠다

구상낭 2022. 12. 7. 12:18

내일신문 2013-12-13 17:13:06

미국 국방부는 연간 예산 약 5,500억 달러(한국 GDP총액의 절반)를 쓰며 미국의 세계전략을 펼치는 몸통이자 날개다. 현역 군인 140만 명을 포함하여 민간인 예비군 등 320만 명을 거느리고 있으니 세계 최대의 고용주인 셈이다.

하루하루의 미국 국방부를 움직이는 사람은 66세의 척 헤이글 국방 장관이고 그 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있다. 그런데 정권의 수명을 넘어 20년 30년 단위의 미국 군사 전략의 골격을 그리는 사람은 92세의 노인 앤드루 마셜이라는 사람이다. 그의 공식 직함은 onA국장, 전설적인 군사 전략가다. 아마 미국의 수백만 공무원 중에 최고령일 것이다. 대단하다기 보다 신기하다.

ONA(Office of Net Assessment)는 마셜을 포함하여 아홉 명의 국제관계 및 군사전략 전문가들로 이뤄진 군사 전략 싱크탱크다. 20년, 30년 후 미국 군사전략상 대두될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국방장관에게만 보고한다. 마셜은 40년간 13명의 역대 정부 국방장관에게 미국 국방부의 미래 전략 보고를 독점해온 터줏대감이다.

올해 그는 40년간 차지했던 onA국장 자리에서 쫓겨날 뻔했다. 그런데 그의 자리를 지켜준 것은 미국 의회의 여야 의원들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미국은 연방정부 폐쇄에 직면할 정도로 재정위기가 심각하다. 각 부처마다 예산 줄이기가 큰 과제고 국방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실의 산하 공무원은 2,400명, 그 중에 200명을 5년간에 걸쳐 감축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감축 대상에 onA가 꼽혔다. 냉전시대 창설된 이 부서의 효용성이 그 연간 예산 1천만 달러의 가치도 안 된다는 판단이 섰던 모양이다.

ONA폐쇄 계획을 알고 여야 의원들은 척 헤이글 국방 장관에게 onA를 없애지 말라고 편지 공세를 펼쳤다. 의원들이 주장하는 onA 존치의 근거는 노(老) 전략가 앤드루 마셜의 탁월한 선경지명이다.

그가 어떤 노인이기에 근래 들어 정파싸움이 격렬해지는 미국에서 여야 정당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인지 흥미롭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마셜은 1949년 캘리포니아에 있는 비영리 싱크탱크 랜드(RAND)코퍼레이션의 핵전략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1972년 당시 닉슨 대통령 안보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 박사는 마셜의 능력을 간파하고 워싱턴으로 불러들여 국가안보회의에서 일하게 했다. 미국 정부는 1973년 냉전에 대비하기 위해 국방부에 onA를 설치했고, 닉슨 대통령은 마셜을 그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그 이후 정권이 7번이나 교체되고 직속상관인 국방장관이 13명이 교체되었지만 마셜은 40년 동안 건재했다.

마셜의 예견은 CIA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 소련 경제가 생각보다 나쁘다며 연방체제 붕괴 예측을 내놓았고, 1980년대에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가 안보 및 전략적으로 역동적 지역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지금은 그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때는 안보 전문가들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1960년대에 정밀타격무기의 필요성을 전략 틀에서 제시했고, 전장에서의 드론(무인비행기)과 로봇의 필요성을 한발 앞서 내놓았다. 2003년 조지 부시 대통령 전반기에 마셜은 정권의 코드와는 영 맞지 않게 급작스런 기후변화로 핵전쟁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가 그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부분 군사 및 안보 전문가들은 토크쇼에 나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뽐냈지만, 마셜은 국방부 구석 사무실에서 쳐 박혀 일만하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마셜은 국방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요다(Yoda)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요다는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우주공화국의 제다이전사 집단 사부(師父)다. 동양 문화에서 보면 제갈량 같은 존재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어떤 보수주의 안보 전략가는 “앤드루 마셜은 너무 늙었다. 내가 그 자리에 갈 것이다.”고 호언했지만 그 후 30년 간 마셜은 그 자리에 있었다. 미사일 방어 체제를 비롯하여 미국의 주요 국방 인프라는 그의 보고서에 기초하여 구축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고위 군 수뇌부도 간헐적으로 나오는 ‘마셜보고서’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고 실토할 정도다.

90세가 넘은 사람이 신문 뉴스에 나오는 경우는 대개 부음과 함께이다. 그런데 거대한 미국의 군사적 미래를 92세의 노인에게 맡겨 놓는다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초인적인 그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유능한 경험자들의 지혜를 정년이라는 그물 속에 가두어 사장시키지 않고, 그 능력을 국가를 위해 쏟아놓게 하는 미국 여야 정파의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내일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중국해는 고래싸움 터  (0) 2022.12.07
블룸버그 방식의 돈 정치  (0) 2022.12.07
정몽구 회장의 '전기차 특명'  (0) 2022.12.07
남 일 같잖은 필리핀 태풍  (0) 2022.12.07
농협이 문제다  (0) 202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