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남 일 같잖은 필리핀 태풍

구상낭 2022. 12. 7. 12:15

내일신문 2013-11-19 14:34:33

 

하이옌(海燕)은 ‘바다제비’를 뜻하는 중국어로 듣기만 해도 날렵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이 붙은 태풍은 잔인했다. 태풍 하이옌은 필리핀 군도를 가로지르며 인구 22만의 도시 타클로반을 초토화했다. 필리핀 국민은 충격에 빠져 있고, 필리핀 정부는 구호활동에 역부족이다. 

 

외신이 전하는 뉴스 화면은 눈뜨고 볼 수 없이 처참하다. 초속 105미터의 폭풍과 높이 4~5미터의 태풍해일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 후, 남은 것은 무더기로 익사해 죽은 시체와 폭격을 맞은 듯이 산산조각 난 건물의 잔해뿐이다. 언론사 특파원들은 거리마다 건물마다 사람의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고 보도한다. 이재민들은 굶주림과 전염병에 노출되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유엔은 사망자를 약 5,000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재민은 필리핀 인구의 10%인 9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태풍 하이옌과 관련되어 쏟아지는 국제 뉴스에서 세 가지 관점, 기후변화 빈곤 국제원조가 눈길을 끌었다. 

 

첫째, 기후변화가 수퍼 태풍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태풍 하이옌의 풍속은 초속 105미터로 태풍 관측 사상 가장 강력했다. 미국 뉴올리언즈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초속 70미터를 훨씬 능가했다. 필리핀은 원래 태풍의 길목이다. 야자수는 태풍에 무척 강하다. 그래서 야자수는 식량, 섬유, 땔감을 얻는 이 지역의 필수 작물이다. 태풍 하이옌이 강타했을 때 바람이 얼마나 셌던지 뿌리 채 뽑힌 야자수가 흉기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했다.

 

왜 옛날에 없던 수퍼 태풍이 발생하는 것일까. 태풍의 에너지원은 높은 해양 수온이다. 기후변화에 의한 해양수온 상승으로 하이옌이 살인적인 태풍으로 발달했다는 데 많은 과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할 때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세계 각국대표들이 모여 유엔 기후변화협약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하이옌 재난 소식을 듣고 필리핀 대표는 단식에 들어갔고, 기후변화에 국가 존망이 걸린 군소도서국 대표들은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 등 온실가스 대량 방출국가에 대해 기후변화를 막게끔 협상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으라는 촉구였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협상진행을 보면 온실가스의 의미 있는 감축은 부지하세월이다. 리우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서구 몇 나라를 제외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 나라는 거의 없다.

 

기후변화의 봇물은 피할 수 없이 쏟아질 것이다. 기후변화는 한반도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바다 수온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놓고 보면 필리핀의 일이 바로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태풍 하이옌 같은 자연재앙이 발생하면 가난한 나라, 가난한 지역,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고통이 크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재난을 예방하고 대응하고 복구하는 데는 경제제도, 과학, 기술능력이 종합된 국력이 필요하다. 안전한 주거지역을 조성하고 견고한 주택을 짓고 대피시설을 만들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필리핀은 아직 개발도상국으로 그럴 돈이 없었고, 재난에 취약했다. 부유한 나라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어 있다. 

          

셋째, 재난을 당한 이웃 나라를 돕는 일도 한 국가의 세계전략과 그 국민의 성숙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재삼 확인되었다. 미국은 항공모함을 포함한 함정 여러 척을 필리핀 구호작전에 투입하고 2,000만 달러를 긴급 지원했다. 영국도 1,600만 달러를 지원하고 함정을 파견했으며 일본은 1,000만 달러를 보내고 자위대 50명을 긴급구조대로 보냈다. 반면 중국정부는 1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혀 중국내의 비판 여론까지 생겼다.

 

한국 외교부는 물자지원까지 포함해서 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으나 여론은 싸늘한 편이다. 경제력으로 볼 때 일본의 1,000만 달러에 비해 적은 액수가 아닌데 왜 그럴까. 한국은 인연을 중시하는 나라다. 필리핀은 한국전쟁 때 파병했고 경제협력도 해주던 우방이다. 필리핀 여성 1만5,000명 정도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살고 있으며 수많은 노동자도 한국서 일하고 있다. 필리핀 출신 국회의원도 활동하고 있다. 이런 인연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정부의 필리핀 원조 규모와 열의에 만족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업을 비롯한 민간구호 행렬이 이 빈틈을 채워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