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내가 무엇을 보았다 말할 수 있으리

구상낭 2022. 11. 7. 12:23

인간관계와 경제생활에 유용한 지혜 제공
최인철 지음/21세기북스/1만원

 

 

서울대 최인철 심리학 교수가 성인 40명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수강자들은 대부분 기업체 임직원 또는 공직자 등 사회적 지위와 식견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최 교수가 말했다.


40초짜리 아주 짧은 동영상을 준비했습니다. 6명의 사람들이 서로 공을 주고받는 공놀이 동영상입니다. 3명은 흰 옷을 입었고 3명은 검은 옷을 입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흰 옷을 입은 사람이 흰 옷을 입은 사람에게 공을 몇 번 패스하는지를 정확히 세어보십시오.


동영상이 끝나고 최 교수가 결과를 묻자 수강자들이 대답했다. “열네 번입니다.” “열세 번 아닌가요.
최 교수가 다시 물었다. “혹시 공놀이 동영상에서 고릴라를 본 사람은 손을 들어보십시오. 15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나머지 25명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교수는 꼭 같은 동영상을 반복해서 틀었다. 6명의 사람이 공놀이를 한창 하는데 어느 순간 고릴라가 오른쪽에서 나타나 일행 사이에서 몸동작까지 보인 후 왼쪽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4월 중순 서울대의 과학기술혁신최고전략과정 강의실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참석자의 60퍼센트 이상이 두 눈을 번쩍 뜨고서도 너무나 명확한 사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공놀이와 고릴라’ 동영상은 미국의 한 심리학 교수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를 실험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최 교수의 얘기로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강연 초청을 받아서 이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고릴라의 등장을 발견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는 집단은 없었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은 허점투성이다. 명확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도 보지 못한다. 착각과 오류, 오만과 편견, 실수와 오해로 가득 차 있다. 심리학은 이런 인간의 허점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의 한계에서 비롯됨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어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심리학에서는 ‘프레임’이라고 한다. 창은 건물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는 틀이지만 그 창만큼의 세상만을 보게 되듯이, 마음의 창도 한 개인의 마음에 형성된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최인철 교수가 2007년 펴낸 책 ‘프레임’은 마음의 창이 갖는 한계성을 풀어헤치는데 집중한 책이다. 다이어트에 고심하는 사람은 세상을 ‘음식프레임’으로 보게 되고, 아이를 낳은 부모는 세상은 불안하다는 ‘부모의 프레임’을 갖게 된다. 최 교수는 자신과 외국학자들이 수행한 실험을 예시하고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결시켜 프레임을 설명하기 때문에 이 책은 재미있고 유익하다.


저자는 프레임 설정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미국에서 회자되는 유머로 제시하고 있다.
두 친구가 예배 보러 교회에 가면서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결론이 안 나자 한 친구가 랍비(유대교 목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가 “선생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라고 묻자 랍비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그건 절대 안 되네. 기도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그럴 수는 없지.
그러자 다른 친구가 “질문이 잘못됐다”며 랍비를 찾아가 물었다. “선생님, 담배를 피우는 중에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그러자 랍비는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형제여,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네.


기도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든 담배를 피우면서 기도를 하든 동일한 행동이다. 그러나 질문의 프레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딴판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신문 방송의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질문 프레임에 의해 심히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프레임의 속성을 알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예를 들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그릇에 든 밥을 반만 먹는 노력보다는 아예 그릇의 크기를 반으로 줄이는 것이 프레임에 접근하는 지혜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핵심 프레임 4가지를 분석한다. 첫째가 ‘자기프레임’이다. 우리는 자기의 생각과 선택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성을 갖는다는 프레임속에 갇히게 된다. 남들은 나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데 나는 남들이 나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조명효과’는 이런 자기 프레임을 말해준다.


둘째가 ‘현재 프레임’이다. 저자는 “내가 그럴 줄 알았지”라는 사후판단을 내리는 일에서 현재 프레임을 찾는다. 축구경기에서 지면 그 결과를 보고 마치 자신이 과거에 그렇게 예측했듯이 비판을 한다. 심리학 연구사례에서 사람은 과거 죽이기를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 회상해냈다는 자기의 과거 모습은 대개 현재의 자기 모습이다. 그래서 자서전이란 게 얼마나 왜곡된 자신의 모습인지를 말해준다.


셋째가 ‘이름 프레임’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름에 붙은 대로 세상을 판단한다. 이름 프레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돈이다. 시장에서는 돈은 숫자로만 가치가 인정된다. 그러나 개인에게 같은 1만원이라도 그게 월급봉투에서 나올 때와 우연이 책상서랍에서 찾았을 때는 쓰는 태도에서 다르다. 공돈이란 이름이 붙으면 지혜롭지 못하게 쓴다. 푼돈이라는 이름이 붙어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름 프레임은 반대로 생각하면 여러 가지 상품 판매 전략에 활용된다.


네 번째가 ‘변화 프레임’이다. 심리학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카네만 교수의 리서치 결과를 토대로 사람들의 경제적 선택은 ‘손실혐오’의 속성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즉 동일한 양의 이득이 주는 만족보다는 동일한 양의 손실이 주는 충격이 2.5배 영향력이 크며 이에 따라 사람들은 경제적 선택을 하게 된다.


저자는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한 10가지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규칙적인 운동이 근육을 늘리듯이 프레임을 바꾸는 것도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야 달성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3년 전 나온 이 책이 23쇄를 거듭하며 널리 읽히는 까닭은 현대인의 심리를 ‘프레임’을 통해 피부에 와 닿도록 분석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관계와 경제생활에 매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지식과 그 지식 뒤에 숨겨 있는 지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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