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똑똑해져야 하는 이유

구상낭 2022. 11. 7. 12:21

2010-05-04 08:00:09

올봄 날씨는 유난히 변덕스럽다. 눈도 많이 왔고 벚꽃도 늦게 피었다. 아직도 길거리에 겨울옷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이상저온 현상은 급기야 봄 야채 값을 올려놓았고, '애그플레이션'의 우려를 불러오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애그플레이션 현상의 진원지는 중국인 것 같다. 우리가 그나마 저렴한 식품을 소비하며 생활하게 된 것은 값싼 중국 농산물 덕택이다. 그런데 지금 이상 저온이 중국에서도 심각하다고 한다. 한국에 다량의 농산물을 공급하는 산동성 지역 등 중국 북부는 이상 저온에 시달리고 있고, 중국 남부 지역은 이상 가뭄으로 농산물 작황이 좋지 않다.  그게 기후변화 탓인지 일시적인 저온 현상인지 모르나 우리 서민경제 생활에 적잖은 고통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중국 지도부의 움직임에 북핵문제의 방향이 틀어지고 우리 경제가 출렁거리는 것이 자명하듯이, 중국의 자연환경 변화에 우리의 식탁 경제가 흔들리는 것도 이제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의 사막지대에 폭풍이 불면 하루 이틀 후 우리의 하늘은 황사가 뒤덮고, 우리의 산야는 중국에서 형성된 산성비가 내린다.

 

몇 년 전에는 미국발 곡물가격 폭등이 전 세계를 흔든 적이 있다. 미국 정부가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에탄올 생산 장려책을 쓰자 옥수수뿐 아니라 세계 주요 곡물가격이 폭등하는 연쇄파장이 일어났다. 이것은 자연 현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펼쳤던 에너지 정책이 태평양 건너와 영향을 주었던 결과였다.

 

중국의 기상변화가 남의 일이 아니고, 미국의 자동차 연료정책이 우리 일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21세기의 시대적 특징이 정보화와 세계화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계금융시장의 동조화(同調化) 현상은 10여 년 전부터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져 있다. 요즘 아이폰의 확산이나 애그플레이션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빠르게 글로벌사회(global society)의 중력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글로벌사회에 깊숙이 발을 담근 채 살고 있는지를 역력히 보여준 사례는 지난 4월 중순에 일어났던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폭발이다. 과학의 발달과 재난예방의 개가라고 할까. 인구 30여만 명의 이 섬나라에서는 화산폭발로 인한 사상자 소식은 없었다. 그러나 대기권으로 뿜어진 화산 구름으로 유럽 일대에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화산폭발 전날에 나온 레이더 이미지는 유럽대륙이 온통 날아다니는 비행기 천지였으나, 화산폭발 뒷날 그곳은 비행기가 거의 뜨지 않는 빈 하늘의 이미지였다.  

 

옛날 같으면 북대서양 한 구석에 있는 섬의 자연현상은 서유럽의 일이거나, 기껏해야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배와 비행기가 왕래하는 미국 정도가 관심을 가질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화산폭발의 영향은 피부로 다가왔다. 화산재나 유황냄새가 날아온 것이 아니다. 우선 유럽이나 아프리카 지역으로 여행을 갔던 한국인들이 발이 묶이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보다 더 실감나는 일은 유럽행 항공기가 뜨지 못하자 인천공항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외국인 여행객들의 모습이었다. 유럽으로 나가는 수출화물도 발이 묶여 많은 손해를 유발했다.

 

인터넷, 기후변화, 국제무역, 자본이동, 한류, 해외여행, 세계증시 등 글로벌사회를 상징하는 현상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아이슬란드의 조그만 화산폭발이 몰고 온 소동을 보면서 우리가 글로벌사회의 시민이란 것을 실감하게 된다.

 

미국이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라는 저서에서 '지구촌'(global village)라는 말을 쓴 것이 1964년이었다. 미국에서 TV매체가 영향력을 확산하던 때였고, 그후 너도 나도 '지구촌'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전기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정보가 지구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동시에 전달됨으로서 지구가 축소된 것과 같다는 의미로 창안된 말이었다. 이 말이 함축하는 의미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마을공동체의 일처럼 급속도로 알려지는 속도와 전달 범위에 무게가 실려 있지 않았나 싶다.

 

세계화(globalization)란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베를린장벽 붕괴를 전후한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경제적으로는 무역장벽이 급속히 걷히고, 기술적으로는 정보통신기술이 전 인류를 네트워크로 연결했으며, 기후변화 등 생태환경문제가 인류공통의 긴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 나라의 일과 생각을 국경 속에 가둘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텔레비전이 지구촌을 상징하는 대량전달 매체였다면, 글로벌사회를 특징짓는 매체는 인터넷이다.

조금은 낭만적이기도 했던 ‘지구촌’시대는 갔고, 지금은 온갖 정보가 난무하고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글로벌사회가 왔다. 큰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우리의 일로 변환되어 다가온다. 신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다.

 

이런 글로벌사회에 잘 적응해 나가는 덕목은 무엇인가.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개인도 조직도 국가도 똑똑해져야 한다.

(내일신문 5월4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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