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100만%,베네수엘라 초(超)인플레

구상낭 2023. 10. 23. 21:50

2018-09-05 11:57:52 게재

 

남미의 베네수엘라가 초(超)인플레이션으로 폭삭 망해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8월 하순 이 나라의 물가 폭등 현상을 현지에서 전하면서 베네수엘라의 PDVSA(국영석유회사)에서 30년 동안 일한 여직원이 한 달 치 봉급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계란 두 꾸러미라고 보도했다.

석유는 베네수엘라 경제의 알파요 오메가다. 과거 국영석유회사는 젊은이들에게 꿈의 직장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한전에 입사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랬던 석유회사의 직원 수천명이 올해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인플레 때문에 월급으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슈퍼마켓에서 닭 한마리 값은 1,460만 볼리바르(베네수엘라의 화폐단위). 이 액수를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2달러20센트다. 슈퍼마켓의 닭 한마리와 그 다섯배는 됨직한 돈의 부피를 비교해 놓은 세계 언론의 사진보도가 살인적 인플레를 실감나게 한다.

올해 들어 8월 중순까지 물가상승률은 4만6300%였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좋아질 기색은 전혀 없고, 더욱 비참하게 추락할 것이란 예측이 국제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측한 올해 말 인플레율이 100만%다. 1년 동안 물가가 1만 배가 오른다는 얘기다. 식품을 사기 위해 가방에 담고 가던 돈을 이제 수레에 싣고 가야 할 판이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어떻게 살까.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궁여지책으로 종전 지폐의 액면가에서 ‘0’ 다섯개를 지운 화폐평가절하와 최저임금 3000% 인상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 누구도 그 약발이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통제 불능의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볼리바르 대신 달러를 통용시키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반미 노선을 고집하는 마두로 대통령이 이를 채택할 리는 만무하다.

마두로 대통령이 매달리고 싶은 밧줄은 석유값 상승이다. 2년 전 배럴당 30달러까지 폭락했던 석유값은 70달러까지 올랐다. 제대로 작동하는 경제였다면 쾌재를 불렀을 텐데 현실은 악화일로다. 2013년 마두로 집권 당시 하루 300만배럴이었던 산유량이 5분의 2로 줄어들어 지금은 120만배럴이다. 땅에 석유는 풍부하게 묻혔지만 장비는 녹슬고 경영은 엉망이어서 생산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닭 한 마리 값은 1,460만 볼리바르

국영석유회사 시설은 약탈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둑뿐 아니라 직원들이 회사의 자동차 집기 파이프 등 기자재를 닥치는 대로 훔쳐다 판다. 마두로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군을 철저히 악용했다. 안보 위기가 없는 나라인데 장성을 2000명이나 늘렸고, 이들을 각료, 주지사, 국영석유회사 임원 등 요직에 임명했다. 부패와 무능으로 석유회사의 경영은 엉망이다.

한때 주변국에 원조를 해주던 베네수엘라는 난민 배출국이 됐다. 먹고 살 수 없어 콜롬비아 등 이웃 나라로 일거리를 찾아 국경을 넘는 인구가 하루 수천명이다. 220만 명의 난민이 국경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는 자원 부국이다. 1960년 사우디와 함께 석유수출국기구(OPEC)을 창설하여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했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남미에서 가장 잘 살고 민주정치가 정착할 소지를 안고 있던 나라였는데, 민주정치는 고사위기에 있고 3000만 인구의 90%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이 비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두로 대통령의 포퓰리즘 경제정책이 실패의 요인이지만, 그 뿌리는 1999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다. 차베스는 막대한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쿠바 등 주변 남미 국가에 오일달러를 제공하며 사회주의 반미연대를 구축했다. 고유가 시대에 그의 구상은 나름대로 잘 먹혀들었다. 석유값이 상승하며 국가 재정은 넉넉해졌고, 국민에게 의료와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사회주의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며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차베스의 독특한 카리스마에 베네수엘라 대중은 열광했다. 2012년 차베스가 암으로 죽자 그의 부하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통령이 되어 포퓰리즘 정책을 계승했다.

마두로는 오직 권력유지에만 골몰

마두로는 그날그날 쏟아지는 오일머니에 의존하여 오직 권력유지에만 골몰했을 뿐, 세계의 큰 흐름 속에서 국민을 먹여 살릴 장기 비전과 전략을 짜는 정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은 공짜로 던져주는 대중영합의 복지혜택의 맛에 취했다.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돌아온 것은 초인프레이션율 100만%의 비극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20년 후 석유 때문에 우리 국민이 파멸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다.”

1970년대 석유 값의 폭등으로 베네수엘라 재정수입이 4배 증가하여 국민들이 붕 떠 있을 때 의미심장한 경고를 보낸 사람은 OPEC창설의 기획자였던 페레스 알폰소 전 석유장관이었다. 시간만 좀 늦춰졌을 뿐 그의 예측이 적중하고 말았다. 아무리 자원이 많은 나라도 국가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쫄딱 망한다는 교훈을 보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칼 마르크스가 남긴 명언이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이 희극으로 반전되는 날이 21세기 안에 올까.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