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1-03-10 16:18:37
한니발은 2230년 전 로마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카르타고의 명장으로 후세 사가들은 세계 전쟁사에서 불세출의 전술가로 평가한다. 로마 1000년사에 로마 밖의 인물로 로마 역사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한니발일 것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한니발’이라는 이름을 꽤나 좋아하는 것 같다. 미국에는 ‘한니발’이란 도시 이름도 있다.
지금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리비아의 통치자 무아마르 가다피의 다섯째 아들의 이름이 ‘한니발’이다. 리비아는 옛 카르타고의 영토였으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니발에 대한 향수가 없지 않을 것이다. 가다피가 한니발 장군에 대해 언급한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아들의 이름을 한니발로 지은 것을 보면 그의 영웅 심리를 움직이는 무의식 속에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잠재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한니발’은 페니키아어로 ‘우아하다’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가다피의 다섯째 아들 한니발은 우아하기는커녕 온갖 망나니짓을 하는 보통 문제아가 아니다. 올해 35세인 한니발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여자폭행, 취중운전, 경찰관폭행 등 못된 짓을 하고는 리비아 외교관들로 하여금 면책특권을 받아내게 하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2004년 한니발은 프랑스 여행 중 호텔에서 동행한 리비아의 모델이자 여자 친구인 알린 스카프를 두들겨 패서 파리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그는 나중에 스카프와 결혼해서 애까지 낳았다. 작년 2월 한니발은 가족을 데리고 하루 숙박비가 5천 달러가 넘는 런던의 호화판 호텔에 투숙했는데, 심야에 아내의 코뼈를 부러뜨리는 폭행을 가해 경찰의 수사를 받자 대사관 직원을 시켜 면책특권을 받게 했다.
한니발은 돈도 물 쓰듯 썼다. 2009년 12월 31일엔 호화 파티를 열어 팝가수 비욘세를 초대해서 출연료로 비욘세에게 200만 달러를 줬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뜨기도 했다. 한니발이 이런 망나니짓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 가다피의 그늘에 숨어서 석유에서 나오는 막대한 부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가다피는 존망지로에 놓여 있다. 27세의 혁명아 가다피가 70세의 탐욕스럽고 추악한 독재자로 변한 모습을 보면 영국의 역사가 로드 액턴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1960년대는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군사 쿠데타의 열풍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어느 날 신문을 보면 군복을 걸친 장교가 총칼을 들고 나타나서 대통령이나 국왕을 몰아내고 권력자가 되었다. 무아마르 가다피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사막의 유목민 천막 속에서 태어난 그는 1969년 혁명 당시 베두인의 강인한 인상을 풍겼고 아랍민족주의 노선을 견지함으로써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낯설면서도 기묘한 매력을 남기기도 했다.
로마를 괴롭히고 로마인의 칭송을 받았던 카르타고의 전쟁 영웅 한니발과 북아프리카의 문제아 가다피를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그렇기는 하지만, 가다피도 40년 권좌에 있으면서 국제정치에 엄청난 파장을 간단없이 일으켰던 사람임에 분명하다.
20세기의 리비아는 로마 시대의 카르타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생 약소국이었다. 이집트 사우디 이라크와 같은 전략적 위상을 가진 국가는 못되었다. 그럼에도 산유국이라는 지렛대 하나를 갖고 서방 세계, 특히 미국을 내내 애먹게 한 것은 가다피의 특유한 캐럭터 탓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전투기로 국민을 폭격하는 그의 모습에서 가다피의 모든 것을 함축해 볼 수 있다.
그가 리비아에 남긴 긍정적 영향은 무엇일까? 오일머니를 탕진하며 국민을 억압하고 난 후 그가 사라진 리비아에는 정치적 혼란과 공백만 남을 것이다. 그가 내세웠던 아랍민족주의는 권력의 포장술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내전을 진압해서 권력을 연장할 수 있을지 모르나 가다피의 권력은 말로를 향하고 있다. 한니발은 말년에 흑해 연안의 소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자신을 붙잡아 공을 세우려는 로마군 현지 장수의 공작을 눈치 채고 소지하고 다니던 독약을 삼키고 자살했다. 가다피는 그 권력의 종말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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