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1-04-25 17:45:10
기화요초가 만개한 이 좋은 계절에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봄비 한 방울이 떨어져도 벌레를 만지는 것처럼 몸을 움츠린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이 대기와 바닷물을 오염시키고, 또 우리나라 공기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하니 모두가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방사능 낙진의 영향은 전혀 염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과학자들이 말하건만 일반인들은 과학자의 말을 믿고 행동하려 하지 않는다.
20여 년 전 자몽 농약 파동이 있었다. 그 때 미국 신문에서 한국 소비자의 행태를 꼬집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인즉 한국 언론과 소비자의 심리는 오염 허용치를 인정하지 않고 식품업자로 하여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흑백 논리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허용치 안이냐 밖이냐를 우선 따져야 하는데, 한국 소비자는 ‘잔류 농약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 기준으로 삼으려는 비과학적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이 과학을 읽는 태도는 매우 역설적이다. 지금과 같이 방사능 누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과학적 확신에 찬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당분간 허용치에 따라 비에 몸을 노출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서도 이러니 기준치의 몇 백배, 몇 천배로 오염되는 후쿠시마 일대 현지 주민이나 일본인들이 느끼는 방사능에 대한 공포감은 이루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붕괴되어 버린 동일본의 도시들은 더 견고한 신도시로 거듭 날 것이며, 살아난 주민들은 이웃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새로운 생활 기반을 닦아갈 것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는 오래오래 저주와 금기의 폐허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폐기는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폐기는 일반 공장이나 시설물의 폐쇄와는 성격이 다르다. 방사능 오염 문제로 오랜 기간 동안 쓸 수도 없고 인간의 접근도 금지된다. 간 나오토 일본총리가 밝힌 구상을 보면 반경 20킬로미터 안을 피난구역으로 정해 그 안의 사람들을 집단 이주시킬 계획이다. 약 200평방킬로미터에 해당하는 땅이 사람이 살 수없는 죽음의 땅으로 10~20년간 비워두어야 한다.
후쿠시마에 생길 이 유령도시는 서울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넓이다. 일본보다 원자력발전소 밀도가 2배나 되는 우리나라에서 후쿠시마와 같은 방사능 누출이 생겼을 때는 그 파장을 상상하기 힘들다. 한국 원자력발전소가 일본 것보다 안전하다는 전제는 태평양 지진대에서 일본열도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땅속의 일을 감히 장담할 수 없다는 교훈은 이번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가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고리에 최초의 원자로를 건설한 지 33년이 됐고, 현재 21기의 원자로를 가동하여 전력수요의 약 40%를 공급하고 있다. 정부는 원자력 에너지의 의존도를 더 높일 요량으로 시설을 확대해가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예사로 흘려 넘길 수 없는 대목은 원자력발전소를 폐기했을 때 부수되는 문제다. 사고가 없더라도 원자력발전소는 수명이 다하면 폐기해야 한다. 폐기된 원자력 발전소가 우리에게 지울 부담은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국민은 잘 모른다. 정부는 말하고 싶지 않고, 국민은 값싼 원자력에 익숙해서 관심이 없다.
하지만 노후 원자로 폐기는 곧 닥칠 문제다. 최근 30년 수명을 다한 원자로를 연장하여 쓰고 있는 고리 1호기가 차단기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고리 주변 사람들은 뭐가 잘못될까 싶어 불안하다. 원자력 당국은 큰 고장이 아니라고 하니 안심이 되지만,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을 연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원자력 안전 당국이 수명연장을 해주면서 엄격한 심사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21세기 문명은 더욱 전기 에너지에 의존해가고 있다. 그러나 그 전기 에너지원인 석유와 우라늄은 자원고갈과 안전관리 위험성으로 불안하다. 원자력이 값싼 에너지로 인식하는 한 우리는 방사능에 노출될 위험을 더 안게 될 것이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국가적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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