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1-02-27 14:58:53
1981년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되고 무바라크 부통령이 이집트의 권력을 장악했을 때 엄마 젖을 빨던 한 살 배기 ‘호랑이 새끼’가 무바라크를 물어뜯을 날을 기다리며 자라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으리라. 30년 동안 컴퓨터 밀림 속에서 자라던 그 호랑이가 지난 2월 8일 튀어나와 카이로의 타흐리르(해방) 광장에서 포효했고, 무바라크는 30년 권좌를 내려놓았다.
와엘 고님. 앳된 30세 이집트 청년이 무바라크의 30년 철권통치에 종지부를 찍은 혁명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감정이 북받치면 소리 내어 울어버리는 이 신종 영웅은 우리가 종래 생각해왔던 그런 영웅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는 그의 변명이 말해주듯 대중을 상대로 정치적 선동과 카리스마를 익숙하게 구사하는 그런 영웅은 아니다.
고님은 인터넷 회사 구글(Google)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마켓담당 임원이다. 이집트에서 태어나 두바이에서 자랐고, 그가 카이로 대학에서 공부한 것은 정치학도 아니고 경영학도 아니다. 컴퓨터를 공부한 엔지니어다. 인터넷에 몰두하면 일어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아내와 잘 다투는 그런 남자다. 그의 스토리를 쓴 기사를 보면 고님은 마치 영화 ‘소셜네트워크’에 묘사된 페이스북(Facebook)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를 연상하게 한다.
고님은 생계를 위해 구글의 사원으로 일하면서도 은밀히 페이스북(Facebook)이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40만 명의 추종자를 가진 사이버 활동가였다. 가까운 친구가 아니고는 그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이집트의 변화를 위해 이같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그는 1년 전부터 페이스북에 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올렸고, 올해 데모가 터지자 다른 사이버운동가들과 연대하며 데모 진압에 대응하는 요령 등을 알렸다. 1월 하순 구글에는 개인 사정으로 쉬겠다고 통고하고 이집트로 잠입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11일 동안 구금됐다 풀려난 그가 텔레비전과 인터뷰한 영상이 방영되고 2월 8일 타흐리르 과장에 나타나자 열기를 잃어가던 무바라크 퇴진 시위가 탄력을 받았다.
이집트 시민혁명은 지도자 없는 운동으로 불린다. 무바라크 장기독재에 대한 염증이 불러온 민주적 자각이 운동의 엔진이었지 특정 정파가 주도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튀니지에서 발화한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은 이집트에서 절정을 이뤘고 다른 아랍 국가로 번져나갈 추세다. 민주적 시민운동이 꽃필 수 없을 것만 같은 아랍권의 정치적 환경에서 이런 혁명이 가능하게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근래 미디어의 강자로 대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힘이절대적이었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인터넷을 장전한 PC와 이동통신은 거스를 수 없는 기술 문명의 추세이고 끝없이 파생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페이스북을 비롯하여 트위터, 유튜브, 블로그 등 SNS가 맹위를 떨치고 있고 또 그 발전 속도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스마트폰과 같이 고도로 발달해가는 이동통신이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아랍권에 민주화 바람이 부는 것은 이와 같은 1인 미디어가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고, 와엠 고님 같은 엔지니어 출신 활동가들이 이런 미디어를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매스 미디어 시대에는 거대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신문과 방송 등 전통적인 미디어는 권력에 의해 비교적 통제가 가능했다. 1인 미디어는 그런 통제가 쉽지 않다. 1인 미디어의 특징은 매스 미디어와는 달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뉴스와 정보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 컨텐츠의 전파는 네트워크에 의해 거의 매스 미디어의 규모로 확산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세계 67억 인구가 모두 1인 미디어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아랍 세계의 독재체제를 뚫고 퍼진 소셜미디어가 중국 사회인들 뚫고 들어가지 못하란 법은 없을 것 같다. 무림의 고수들이 출몰했던 중국의 인터넷 숲속에서는 고님 같은 SNS의 고수들이 수없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북한인들 예외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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