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2011-03-08 10:28:55
작년 제주도에 위치한 특급 호텔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 사회가 최고의 직업으로 쳐주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객 일행이 이 호텔에 숙박했습니다. 그 손님이 체크인 하고 방에 들어간 얼마 후 호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특급 호텔 서비스가 이 모양이냐.”는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놀란 객실 직원이 달려갔더니 그 손님은 어린 아이 옷을 들어 보이며 “도대체 호텔방을 치우고 손님을 받는 것이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쳤습니다. 객실 직원은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하며 사죄를 했지만 손님은 막무가내로 지배인을 불러오라고 요구했습니다.
호텔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서울에 본사를 둔 특급 호텔 객실에서 묵은 아이 옷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외부로 알려지면 호텔 신용도에도 문제가 생기겠지만 총지배인 이하 종업원들이 줄줄이 본사로부터 혼줄 날 일이 두려울 뿐이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지를 알아볼 겨를도 없이 고객을 진정시키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호텔 지배인은 백배 사죄하며 고객 일행을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가서 60만원 상당의 저녁식사를 접대하며 무마해보려 했습니다. 음식 대접을 받으면서도 그 고객은 “어렵게 준비한 제주도 여행 기분이 산통 깨졌다.”며 이런 일은 언론에 내서 고쳐야 한다고 계속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호텔은 그 고객의 방을 200만 원짜리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시켜주면서 달랬습니다.
‘고객은 왕’이라는 생각을 갖고 서비스를 독려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호텔 측은 일의 전후좌우를 따지기보다는 서비스의 업그레이드라는 비공식 보상으로 고객의 입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지배인은 이 손님이 또 어떤 투정을 해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따라서 호텔 객실 서비스 직원들은 하루 종일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주눅이 들어 근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전 한국일보 1면에 ‘감정 노동자의 비애’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직업적으로 고객을 대할 때 가슴 속으로는 아니꼽고 화가 치밀어 올라도 이를 참고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응대해야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의 스트레스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이 기사를 보니 특급 호텔에서 벌어졌다는 소동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은 백화점, 비행기, 호텔 등의 서비스 현장에 종사하는 종업원이 짓는 미소나 상냥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감정 노동 훈련을 받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마치 배우처럼 미소를 지으며 고객의 불만 등에 익숙하게 대응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본디 성격이나 감정을 자신의 직업적 성취나 일자리 유지를 위해 희생시키는 것이므로 무지무지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분과 배치되는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서비스 종사자의 스트레스를 이해할 만합니다.
민주노총 산하에 있는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서비스직 종사자 3,096명을 대상으로 감정 노동의 후유증 실태를 조사했답니다. 이들 서비스업 종사자 중 심리 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을 정도로 우울증 증세가 심한 사람의 비율이 무려 26.6퍼센트에 이른다고 합니다.
육체적 산업재해에 대해서는 그나마 관심과 제도적 장치가 더러 있지만 서비스업 종사자의 스트레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종업원들의 미소 뒤에 숨어서 비대해지는 정신적 고통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은 이미 블루컬러 노동자 시대에서 서비스 노동자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한국도 급속히 이 추세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서비스업에 일자리가 있다고 강조하며 서비스 업 일자리 창출을 장담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전반적인 추세가 서비스업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고급 서비스 일자리가 아니라 저급한 일자리만 양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17년 전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저임금의 서비스 노동자만 늘어나고 있는 미국의 실례를 들며 위험한 미래를 경고한 바 있습니다. 리프킨에 의하면 컴퓨터와 로봇의 발달로 서비스 산업의 일자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 21세기 사회적 불안 요소만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일찍이 지식노동자 시대를 예언한 피터 드러커도 후기 자본주의의 도전으로 정보사회의 계급 갈등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전문지식을 가지고 고소득을 올리는 지식노동자와 점점 도시의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저급한 서비스직 종사자 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 현상이 지금 미국에서 현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식노동자와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입에 풀칠을 해야 할 감정 노동자들의 갈등 관계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특급호텔에서 일어난 고객 불만과 서비스 종사자의 대응태도를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지식노동자와 감정노동자의 사회적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해서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서비스 일자리도 구하지 못해 집안에 들어 박혀 있는 실업자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호텔 종업원의 감정노동은 기꺼이 견딜 만한 일이 아니냐는 반문이 있기는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