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그룹

세습

구상낭 2022. 11. 9. 18:17

자유칼럼 2011-04-28 19:37:18

현대차 노조가 제기한 ‘직장 세습’ 이슈가 우리 사회의 미묘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현대차 노조는 앞으로 열릴 노사 임단협에서 그들의 요구사항을 제기하기에 앞서 대의원총회에서 ‘2011년 단체협약 요구안’을 결의했습니다. 그 요구안 속에 “회사는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의 자녀가 채용 규정상 적합한 경우 우선 채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며칠 전 아는 대학 교수와 얘기하다가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현대차 노조의 직장 세습 주장을 들으면서 착잡한 생각이 듭니다. 세습이라는 용어는 권력의 세습, 부의 세습, 또는 법조인 의사 교수 같이 명예와 권위를 인정받는 직업에 사용되었던 게 지금까지의 관행인데, 노동자의 신분을 아들딸에게 물려주려 한다는 것이 서글픈 측면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 교수는 나에게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힐난했습니다.

“그들은 연봉을 8천만 원씩 받고 58세 정년까지 보장되어 있습니다. 내 월급의 거의 두 배나 됩니다. 그들은 꼭 같은 작업장에서 꼭 같은 일을 하고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의 허다한 문제를 외면하는 노동귀족입니다. 그리고 민주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공평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는 ‘직장 세습’을 허용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자동차 조립 라인 노동자의 연봉이 8천만 원이라면 고액연봉이라는 게 사회적 통념입니다. 달러로 환산하면 7만 2천 달러쯤 됩니다. 일반인들이 세세히 알 수 없는 임금체계라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고액의 연봉이 정년까지 보장된다면 1인당 평균 국민소득 2만 달러라는 현실과 대비시킬 때 감이 빨리 올 것입니다. 취업난과 소득불균형이 고착되고 있는 어려운 세상에 이 정도면 자녀들에게 일자리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노조가 주장하는 ‘직장 세습’의 논리를 들으니 착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현대차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장기 근속자들의 피와 땀에 대해서는 보답이 있어야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입니다. 그들이 현대차를 키우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답으로 ‘직장 세습’이란 특혜를 주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기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봅니다.

 

현대자동차처럼 국가와 국민의 사랑 속에 성장한 기업도 드물 것입니다. 현대차의 오늘의 위상은 노동, 자본, 경영의 몫도 크지만 국가의 보호정책과 그에 따른 국내 소비자들의 희생에 힘입은 바가 매우 크다고 봅니다. 현대차는 지금도 국민적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한미자유무역협정(FTA)도 공산품 수출을 위해 무수히 많은 타 직업 종사자들의 희생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이 무역협정의 협상을 진행하면서 정부 대표의 심중에서 가장 많이 떠오른 기업이 어떤 회사일까요. 현대자동차가 아닐까요. 현대자동차 정규직이 받는 높은 연봉 속에 이런 국민적 고민과 희생이 포함되었다고 주장한다면 망발일까요.

 

이런 요인을 현대차나 현대차 노조는 깨달을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직장 세습’은 그 교수의 말마따나 공평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고 민주사회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현대차 노조의 주장은 수긍할 수 없지만,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된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는 심각하게 짚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평균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올라선 우리나라는 확연히 사회적 안정감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만과 분노가 차오르고 있습니다. 그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불균형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경제적 불균형은 공정한 게임 법칙아래서 생겨도 불안한데, 지금은 그 게임이 일반 국민이 느끼게끔 불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데서 불안감은 증폭될 공산이 큽니다. 재벌의 불법 편법상속, 전관예우, 종교재단의 세습 분규 같은 불공정하고 비윤리적인 게임이 사회를 얼룩지게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자발적인 노동 세습 주장이 던지는 역설의 의미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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