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미 고교생들의 절규 "미넥스트"(#MeNext?)

구상낭 2023. 8. 12. 21:04

2018-03-06 11:38:51 게재

 

미국 사회에 '미넥스트'(#MeNext?)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묻지마식' 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친구들이 쓰러지는 광경을 보고 공포에 떠는 고등학생들이 어른들을 향해 총기를 규제해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요?"라는 절박함이 바로 미넥스트 운동을 부른 것이다. 마치 지금 한국 사회에 성추행을 폭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일어나듯 기세가 세차다.

미넥스트 운동의 발단은 지난 2월 14일 플로리다주 파클랜드시에 있는 마조리스톤맨더글라스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다. 이 학교 퇴학생 헤랄드 크루스(19)가 반자동 소총을 막무가내로 난사해 17명을 사살했다. 사망자는 거의 고등학생들이다. 사건 발생 후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는 "또"였다. 1999년 4월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이 총기를 난사하여 13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유행병처럼 교내 총격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올해 들어서 2월 14일까지 사망자를 낸 학교 총격이 17건이 일어났으니 "또"라는 단어를 토해낸 것이다.

미국 내 여론이 들끓을 때 보인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교사에게 총기를 지급하고 사격훈련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단체인 NRA(전미총기협회)가 주장하는 바와 똑같은 것이다. NRA는 막대한 정치자금 모금 능력을 갖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대통령 선거전에서 이들의 정치자금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발 벗고 나선 '미넥스트' 절규는 종전의 총기규제 캠페인과는 다르게 미국 전역에서 동정과 반향을 일으켰다. 급기야 3월 24일 워싱턴에서 행진 시위를 벌일 계획이 수립되었다.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 부부,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인사들이 기부금을 내고 워싱턴 데모에 동참할 뜻을 전했다.

'묻지마 난사'에 "다음은 내 차례" 절규

평창동계올림픽에 왔던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는 "북한의 핵위협보다도 당장 밤에 안전한 게 중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 치안 문제의 심각함을 드러내는 심리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생의 총기규제 절규가 수정헌법 2조를 방어막으로 삼고 있는 미국총기협회를 굴복시킬 수 있을까. 미국의 수정 헌법 2조는 개인의 총기 소지를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이 영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은 당시 식민지 시민인 이민자들이 총을 소지하고 사격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기소지는 미국 백인 주류사회의 DNA속을 흐르는 기본권인 셈이다.

25년 전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미국인 총 수집광을 만난 적이 있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구경하던 중 휴식 시간에 옆에 앉은 건장한 중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싱긋 웃으면서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고,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대우'에서 만든 총을 4 자루를 갖고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사실 나는 당시 대우가 총을 만든다는 것도 몰랐다.

그는 텍사스에서 뉴욕에 관광하러 왔다며 다시 총 얘기로 돌아갔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총 150정을 소지하고 있고 집에 사격장을 갖추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아들이 컸을 때 사격을 가르쳤고 지금도 아들과 사격을 같이 할 때가 좋다고 말했다. 미국 서부에서는 아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격훈련을 시켜주고 총을 사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성년식이다.

미국에서 총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 미국의 총기 규제는 일시 들끓는 여론에 의해 쉽게 이뤄지지는 않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미국이 다 좋은데, 총기규제 안돼…"

미국 인구가 3억5000만명인데 현재 미국에는 개인이 소지한 총이 약 3억정으로 추산된다니 미국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 미국에는 한국인이 약 180만명 살고 있다. 교육부가 집계한 2016년 미국 유학생(대학 이상)이 약 6만8000명이고, 초·중·고교에 조기 유학한 학생도 1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많은 동포와 유학생이 살고 있으니 미국에서 총기 난사 뉴스가 들려왔을 때 가족과 친지의 안부가 걱정되고, 자녀를 미국에 유학 보낸 부모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마련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미국이 다 좋은데, 총기 규제가 되지 않아서…"

미국 10대의 절규가 그 동안 꿈쩍도 않던 정치인들을 움직여 미국의 총기 규제를 불러올까. 1960년 대 후반 미국의 대학가엔 히피세대가 일으킨 반전운동이 결국 미국의 월남철수를 불러왔던 경험이 있다. 이번 3월 24일 워싱턴에서 행진할 '미넥스트' 운동이 미국 정치인들의 마음을 바꾸어놓았으면 좋겠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