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호킹 박사가 인류에 남긴 과제

구상낭 2023. 8. 22. 20:38

2018-03-19 11:29:48 게재

 

"빅뱅의 순간 우주의 크기는 '0'이었고, 온도는 무한대였다."

14일 세상을 떠난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지은 책 '시간의 역사' (A Brief History of Time)에 나오는 '천지창조'의 구절이다.

오래 전에 이 책을 손에 넣은 것은 과학적 호기심이라기보다 불치의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블랙홀과 특이점 이론 등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과학적 업적을 남긴 그의 이름값의 매력 때문이었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을 위해 쓴 대중 과학책이라고 하지만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읽다가 중간에 그만 두고 책장 구석에 박아 놓았다.

이렇게 '시간의 역사'를 읽다가 그만 둔 사람이 너무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출판계에서는 '호킹지수'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책을 구입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사람 수를 백분율로 표시한 수치다. '시간의 역사'의 호킹 지수는 6.6이다. 1988년 이 책이 나온 이래 30년 동안 1000만권이 팔렸다고 하니,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은 66만명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읽다가 중단했을지라도 어렴풋이나마 우리가 사는 우주를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호킹의 큰 공적이 아닐까 싶다. 호킹의 말마따나 가수 마돈나가 섹스에 대해 낸 책보다 이 책이 더 많이 팔렸다는 것은 인간의 호기심이 다양함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긍정적이다.

스티븐 호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의 과학적 업적도 있지만 평생 근위축증(루게릭병)에 걸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76년 동안 이 세상에 살았지만 캠브리지 대학원에 다니던 21세에 근육이 굳어지고 기능이 저하되는 루게릭병에 걸렸다. 그는 55년 동안 휠체어에 의존했고,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컴퓨터 음성인식 장치를 통해 책도 쓰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는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과학자였다.

'시간의 역사' 다 읽은 사람 66만명

호킹 박사는 2012년 런던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장애인 선수를 격려하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물론 컴퓨터음성 인식 장치의 도움을 받았다. "발밑을 보지 말고 하늘의 별을 보라."

그의 타계 소식에 평창패럴림픽에 참여한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O) 임원들과 선수들이 그의 죽음을 특별히 애도한 건 이런 연유가 있다.

그의 죽음을 전하는 미디어에는 우주로 떠났다는 표현이 많이 나왔다. 사람들은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보다는 우주 어딘가에서 항상 인류와 같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 같다.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류가 지구를 떠나 우주로 탈출해야 한다는 그의 예언성 경고 때문이다.

갑작스런 핵전쟁, 운석충돌, 기후변화 생명공학에 의한 바이러스 전염병 등으로 지구가 굉장히 위험한 곳으로 변하게 되어 인류가 멸종될 우려가 있으니 100년 안에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여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스티븐 호킹이 이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종말론적 담론도 사그라질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예를 들면, 호킹 박사는 2000년 영국학술원 강연에서 기후변화로 지구가 끝내는 유황이 펄펄 끓고 산성비가 쏟아지는 금성처럼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구 기후는 변화하지만 복원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불가역적인 분기점, 즉 티핑포인트에 도달하면 되돌릴 수 없이 악화한다는 게 기후학자들의 견해다. 호킹 박사는 그 시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비난했다.

기후변화와 인공지능 위험성 경고

호킹 박사는 인공지능(AI)을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화근으로 바라보았다. 인공지능이 이론상 인간지능을 따라할 수 있거나 오히려 인간지능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인공지능이 질병 가난 기후변화 등을 퇴치할 수 있지만, 부정적 측면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과 갈등하며 자신(인공지능)의 의지를 실현시켜 인간을 배척하는 기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말 흥미로운 일은 기후변화의 재앙과 인공지능의 해악을 경고한 스티븐 호킹 박사와 일맥상통하는 강력한 응원자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스페이스X의 CEO 일론 머스크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 식민지를 꿈꾸며 2024년 화성에 인간을 보내겠다고 호언한다.

호킹 박사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일론 머스크라는 대담한 행동 대장을 남겨 놓은 셈이다. 이제 머스크의 화성 식민지 건설 광경이 자못 흥미로울 것 같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