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4 11:47:22 게재
문재인정부 내내 한국에서 원자력 발전은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인가. 문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일찍이 선포한 것이 탈 원전 정책이었고, 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놓고 공론화 논쟁을 거치면서 산업·과학계와 시민운동권의 논쟁, 정치권의 여야 찬반 논쟁이 국민의 마음을 헷갈리게 하고 피로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달 초순 한국전력이 영국의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것은 관련 당사자들에게 미묘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다.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보면, 탈원전 반대 진영은 한국 기술력의 우수성이 인정된 것이라며 문재인 정권의 탈핵정책은 재검토되어야 할 때라고 불을 땠다.
반면, 청와대는 아직 수주가 확정된 것이 아닌 점을 들어 "환영할 일이라며 정부가 뒷받침할 것"이라면서도 기자들에게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무어사이드 원전은 당초 토시바가 따낸 프로젝트였으나 토시바가 사업을 포기하면서 한전이 우선협상자의 지위를 따냈다. 하지만 첫 원전수출 사례인 아랍에미레이트(UAE)원전건설 계약 때 청와대가 나서서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청와대가 담담한 것이 수익 보장이 됐던 UAE 원전수출과 달리 무어사이드 프로젝트는 건설은 물론 운영을 통해 수익을 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에 대한 판단 유보의 자세 때문인지, 탈원전 정책을 내세운 마당에 원전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은 것인지 아리송하다.
무어사이드 원전은 영국의 국가적 에너지 종합계획을 담은 유럽 최대의 원자력발전 프로젝트다. 원자로 3기로 총 340만 킬로와트 용량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사되어 한국의 원전기술이 더욱 발전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한국의 탈원전 정책이 계속되더라도 향후 60년간 원전은 가동되어야 한다. 또 늘어나는 세계의 원자력발전 건설과 운용에 우리의 기술 인력을 진출시킬 수 있다면 이것도 좋은 일이다.
온실가스 감축이란 국가적 과제
하지만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이 던지는 더 중요한 맥락을 읽을 필요가 있다. 사실 영국은 1956년 상업 원전을 처음 세운 나라였고 많은 원전을 건설하고 폐쇄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 동안 탈원전 정책으로 기울던 영국이 원전 프로젝트를 새롭게 추진하는 것은 온실가스(이산화탄소) 감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 2015년 파리기후협정을 비준하면서 1990년 대비 이산화탄소를 57%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은 2025년 발전비중의 9%를 차지하는 석탄화력을 전면 폐쇄하게 된다. 현재 재생에너지의 비율은 26%로 매우 높은 편이지만 영국이 이산화탄소 감축약속을 이행하려면 현실적으로 원자력을 늘리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른 것이다. 현재 영국은 8개의 원자력 발전소(890만㎾ 용량)가 가동 중인데, 이를 1600만㎾ 용량으로 늘릴 계획이다.
영국이라고 원자력의 안전 문제가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늘리는 것은 기후변화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에 의존해서라도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불가피성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구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45년 전 '가이아(Gaia) 가설(假說)'을 내놓고 기후변화를 경고했다. 그는 2004년 지구온난화로 21세기에 세계 인구 80%가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대안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제시했다. 그는 이산화탄소 증가로 일어날 기후재앙이 원자력사고로 일어날 안전문제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러브록의 원자력 옹호 발언은 논란이 되었다. 한편으론 반핵 환경론자들의 반발을 불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재생에너지 확대 없다면 모순된 공약
러브록과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이 노벨상수상자로서 미국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스티븐 추가 있다. 그도 환경론자이며 재생에너지를 강조하지만 재생에너지 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원자력 사용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정 정상회의에 참여하여 2030년 예상되는 배출량 기준으로 온실가스 37%감축을 약속했다. 전임정부의 정책을 대부분 중단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정부는 석탄발전소도 원자력도 줄이겠다는 공약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재생에너지의 획기적 확대가 없다면 지극히 모순된 공약이다. 정부도 국민도 미세먼지, 원전 안전문제, 기후재앙, 재생에너지 기술문제, 그리고 에너지 수요조절까지 염두에 두고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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