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9 11:39:26 게재
리처드 닉슨은 1974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하원의 탄핵소추를 받자 사직한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이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대통령이지만, 미국의 대외정책에서는 큰 치적을 남겼다. 그건 바로 한국전쟁 이래 20여 년 간 적대관계에 놓여있던 중국을 1971년 방문하여 관계정상화의 초석을 깐 일이다. 1979년 미중 국교 수립 후 닉슨은 수차례 중국을 방문하고 친교를 가졌다.
닉슨은 1994년 그의 저서 '평화를 넘어서'(Beyond Peace)에서 중국의 인권 및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중국의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니 중국에 주는 최혜국대우를 철회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중국의 경제력에 비춰보면, 미국이 중국 인권에 대해 설교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10년 후에는 그런 설교가 맞지 않을 것이며, 20년 후에는 중국인들이 이런 말을 듣고는 웃어 버릴 것이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고, 미국 정부 안에서는 인권문제를 걸어 중국에게 최혜국대우를 주느냐 마느냐를 논쟁할 때였다. 닉슨은 중국이 급속히 경제발전을 하면 민주주의와 인권문제가 개선될 것이라고 진실로 생각했던 것일까.
닉슨이 이런 글을 쓸 당시 세계 9위의 경제력을 가졌던 중국은 23년이 지난 지금 국민총생산(GDP) 규모에서 미국을 바짝 뒤쫓는 제2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 중국 밖 세계 시민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운동가 류샤오보(61·劉曉波)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중국의 비인도적 처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이를 말해준다.
중국의 인권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는 반체제 활동으로 형을 받고 복역 중 5월 말기암 선고를 받았다.
'반체제운동 성지' 우려해 화장 강요
본인과 친지들이 해외치료를 요구했고 국제사회가 노력했으나 중국 정부는 해외 치료여행을 허용하지 않았다. 류샤오보가 해외에서 쏟아낼 반체제 목소리가 불러일으킬 파장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류샤오보를 석방했지만 선양(瀋陽)의 국립병원에 연금했고, 지난 13일 류샤오보는 아내 류샤(劉霞)가 지켜보는 가운데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가족들은 매장을 바랐으나 당국은 그의 무덤이 반체제운동의 성지(聖地)가 되는 것을 우려해서 화장을 강요했다.
이렇게 막을 내린 류샤오보의 반체제 인생 28년은 1989년 천안문 사태로 발단되었다. 중국문학을 공부하고 시인이자 비평가로 활약하던 그는 컬럼비아 대학 방문연구원으로 미국생활을 하다가 천안문 사태 소식을 듣고 귀국해 현장으로 달려가 단식투쟁으로 반체제 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천안문 4군자'로 불리며 4차례에 걸쳐 투옥되면서 중국 반체제 지식인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류샤오보의 반체제 운동의 절정은 200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을 택해 선언한 '08헌장'(零八憲章)이다. 그가 주도하고 303명의 서명을 받아 기초한 '08헌장'은 공산당 일당통치를 부정하고 보편적 가치인 자유, 인권, 평등, 민주주의, 법의 지배를 보장하는 헌법 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국가전복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11년 형을 선고받았고, 2010년 옥중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중국정부는 노벨상위원회를 비난하며 류샤오보의 수상식 참석도 허용하지 않았다.
류샤오보의 비극적 죽음과 관련하여 흥미롭지만 무서운 두 가지 현상을 보게 된다. 첫째, 걸핏하면 인권을 들고 나오던 서방국가 정상들이 시진핑 중국 주석 앞에서 의외로 조용하다는 점이다.
류사오보 죽음에 대한 여론 생성 안돼
대부분 정상들은 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는 수준의 반응만 보였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예 류샤오보의 사망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세계는 너무 커진 중국을 상대로 북한핵문제, 통상, 기후변화, 국제테러 등 거래할 일들이 많아진 탓인가.
둘째, 행정특구인 홍콩에서만 애도 시위가 일어나고 있을 뿐 중국 안에서는 류샤오보의 반체제활동과 그의 죽음에 대한 여론이 거의 생성되지 않고 조용하다는 것이다.
서방세계에서는 거의 통제 불능 수준으로 소셜미디어(SNS)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중국에선 14억 인구의 SNS이용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인들이 SNS를 통해 보였던 현상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경제의 발전이, 그리고 소셜미디어 확산이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개선을 불러온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걸 중국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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