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6 11:24:50 게재
"이거 제록스 한 장 떠다 줘." 30~40년 전만 해도 직장 사무실에서 말단 직원들이 상사로부터 흔히 받았던 지시다. 당시 '제록스'는 바로 복사를 의미하는 단어로 일상으로 쓰였다. 이제 누구나 '제록스'란 말은 복사기 제조회사 'Xerox'라는 것을 안다. 1906년 미국에서 창업된 '제록스'는 110년간 복사기의 대명사가 되었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단순한 복사 기술을 뛰어넘는 첨단기술회사로 성장했다.
제록스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 연구센터를 갖고 요즘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등을 연구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프랑스 글레노블에 위치한 '유럽 제록스리서치센터'(XRCE)이며, 이곳에는 인공지능 연구진 80명이 일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국의 대표적 인터넷 기업 '네이버'가 '유럽제록스리서치센터'를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인수액이 1000억원쯤 된다고 하니 굴뚝 공장 인수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겐 자못 놀라운 일이다. 강제로 회사에 묶어 놓을 수도 없는 80명의 AI기술 인력 조직을 사들인 셈이다. 네이버의 이같은 도전적 인수는 알파고 개발로 유명한 영국의 인공지능회사 딥마인드(DeepMind)를 구글이 인수한 것과 비교할 만하다. 세계적 IT기업들이 인공지능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추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네이버가 미래에 가장 중요한 기술로 대두되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보인 것이다.
요즘 어딜 가나 '4차산업혁명'이 화제다. 드디어 문재인정부는 8월 대통령직속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든다고 한다. 위원장을 총리급으로 선정한다고 한다. 정보통신산업에서 이룩한 실적이 끊어지지 않도록 제대로 된 활동을 하면 좋겠다. 4차산업혁명이 무엇인지를 놓고는 분명한 개념 정리가 잘 안 된 것 같다. 혼란스럽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 4차산업혁명을 이끌 핵심기술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 네이버, 유럽 '제록스리서치' 인수
정부 기업 대학 언론이 경쟁적으로 4차산업혁명을 얘기하지만 과연 인공지능 개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일반인들은 거의 모른다. 인공지능 분야에선 미국과 유럽이 앞서 간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 분야 발전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나라는 물론 중국이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중국의 학자들을 취재하여 보도한 것을 보면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력이 급성장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경쟁에서 기술력의 균형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요즘 미국 언론은 중국의 과학 기술 수준을 보도할 때 과장과 엄살을 섞어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배제할 수 없지만,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발전은 전방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미국 국방부가 긴장할 정도라고 한다.
중국의 인공지능 개발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민간기업, 민간 및 정부 공동프로젝트 차원에서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방정부는 인공지능 벤처기업을 대폭 지원함으로써 우수한 해외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테러공격이나 노동자파업 감시 및 국방용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선두 기업은 '중국의 구글'로 불리는 바이두(百度)다.
바이두는 자율주행차 시스템에서 독보적 기업으로 얼굴 인식과 음성 인식 기술에서 굉장히 앞서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보다 1년 앞서 있다고 할 정도다. 중국 정부는 바이두와 협력해서 국방부에서 일했던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소를 설립하고 군사로봇 등 국방용 인공지능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의 인공지능 연구가 이 정도로 발전하고 있으니 미국은 긴장하게 마련이다. 미국의 연구소와 기업에는 중국인 기술자들이 많이 근무하며, 지난 6년 동안 무려 11억달러의 중국돈이 50여개 미국의 인공지능 관련 회사에 투자되었다.
중국 인공지능 선두기업은 '바이두'
중국의 공산주의 독재체제와 달리 개방적인 미국에서는 기술에 대한 정보가 광범하게 공유되기 마련이어서 중국으로서는 기술도입에 유리하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음으로써 사회불안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속성상 인공지능 기술발전을 막을 수는 없다. 어느 나라 어느 회사든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결코 뒷짐 지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 기술은 발전시키되 그 부작용을 치유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의 인공지능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네이버 같은 젊은 인터넷 기업이 1000억원을 선뜻 내놓고 인공지능 회사를 인수하는 것을 보면 참신하고 자극적이다. 세상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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