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중국이 원하는 전쟁- ABC 대전

구상낭 2023. 4. 29. 11:53

2017-05-18 11:31:56 게재

 

세계 민간 항공기 생산은 보잉(Boeing)과 에어버스(Airbus)로 양분되어 있다. 보잉은 미국 첨단 제조업의 자존심이고, 에어버스는 보잉에 대응해 설립한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의 합작회사로 유럽의 자부심이다. 전 세계 민간 항공사는 거의 보잉과 에어버스가 만든 제트 여객기가 주력 기종이다. 한국 항공사들도 다르지 않다.

보잉 비행기 공장은 미국 시애틀 근교의 에버렛에 위치하고 있다. 엔진과 동체를 비롯한 부품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공급받지만 오직 에버럿에서만 비행기 완제품이 조립되어 나온다. 2015년 9월 2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미국에 국빈으로 초대받아 워싱턴에 가면서 시애틀에 기착해 보잉 공장을 방문했다. 시 주석의 보잉사 방문에 맞춰 중국은 B-737기 250대 등 보잉 비행기 300대를 주문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을 방문한 외국 원수가 미국에 풀어놓는 선물 보따리 중 최고는 보잉기 구입 주문서다. 그보다 10년 전인 2005년에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은 보잉 비행기 150대를 주문해 미국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10년 후 미국방문 기념으로 보잉기 300대를 주문한 것은 경제력이 커진 중국의 통 큰 선물 보따리였던 셈이다.

보잉사 역시 시진핑 주석에게 선물 보따리를 내놓았다. 중국에 보잉737 공장시설을 짓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비행기 도색, 기내 좌석과 엔터테인먼트시설, 수리 및 정비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었다. 보잉의 약속은 전략적이었다. 이미 중국에 조립공장을 건설한 에어버스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중국에 기술적 노출이 덜 심한 완성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이때 의외의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였다.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트럼프는 "보잉이 비행기 300대를 팔지만, 중국에 공장을 세우면 미국이 수많은 일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잉과 중국의 국영기업 코맥(COMAC : 중국상용항공기) 합작 공장은 올해 상하이 인근에 문을 열었다.

중, 독자개발 제트여객기 시험비행 성공

지난 5일 상하이 푸동국제공항에서 중형 제트여객기 한대가 굉음을 내며 이륙한 후 1시간 만에 푸동 공항으로 돌아와 착륙했다. 중국 TV채널은 흥분해서 코맥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중형 제트여객기 C919의 시험비행이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그토록 꿈꿔온 B-737이나 A-320과 같은 170 좌석 규모의 비행기다. 이 소식을 보고 받고 시진핑 주석은 2년 전 에버렛 보잉공장을 방문했을 때를 회상하며 기분이 좋지 않았을까. 그는 2014년 C919이 처음 조립라인에서 나왔을 때 이 공장을 방문해 "우리는 만들기보다 사는 게 좋고, 사는 것보다 임대가 좋다고 믿는 데 익숙해왔다. 우리는 자체 항공기 연구와 제작에 더 많이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중국의 항공기 제작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중국의 제트 여객기 제작 열망은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미중수교를 위해 타고온 B-707 대통령 전용기에서 촉발됐다. 보잉707은 상업용 제트기의 시초가 되었던 기종이다. 중국 고위층은 707을 좋아해서 10대를 구입하고 부품을 사들여 707의 복사판인 Y-10기를 만들기도 했으나 개발비 조달이 어려워 1980년대 포기했다. 그러다 2008년 C919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 시험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코맥은 C919 주문량이 572대라고 발표했다. 비행기는 올해 연말부터 대부분 중국 항공사에 공급될 예정이다. C919의 등장으로 보잉과 에어버스의 과점체제가 위협받게 됐다. 세계 항공기 수요는 급팽창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만 2035년까지 5300대가 새로 필요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코맥은 우선 중국시장을 석권한 후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보잉 및 에어버스와 세계시장을 놓고 치열할 경쟁을 벌일 것이다.

항공기시장 에어버스 보잉 코맥 분할 꿈

중국의 꿈은 항공시장의 'ABC 분할'이다. 'ABC'는 에어버스 보잉 코맥의 첫 영문자를 따서 만든 약칭이다. 중국은 21세기의 경쟁력이 항공우주산업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철강 자동차 조선 정보통신기기 전자제품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고 잠수함 핵무기 미사일 등 선진국이 기술전수를 꺼리는 군수산업과 항공우주산업에서 선진국과의 기술 간격을 좁혀가고 있다.

C919 비행기가 본격 출고되면 한국이 그 구매 압력을 가장 심하게 받게 될 나라 중 하나다. 미국 국력의 덕을 가장 많이 입는 기업이 보잉이듯이 중국 국력이 세어질수록 코맥은 한국정부와 항공사에 C919 구매를 전방위로 보챌 것이다.

10년 후 한국인은 중국을 여행하면서 보잉이나 에어버스보다는 C919를 더 많이 타게 될지 모른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