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캠퍼스에 나붙은 포스터나 게시물들은 사회 현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대학 당국이 자랑스럽게 내거는 현수막이 있다. 각종 국가고사 합격자 명단이다. 특히 9급 공무원 시험 합격자 명단을 대대적으로 벽에 걸어 놓은 것이 자주 눈에 띈다. 지방대학에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다.
20세기 후반을 살았던 기성세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9급 공무원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박봉에 비전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요즘 세상은 다르다. 9급 공무원 시험에 대졸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재벌기업 입사시험 뺨치는 경쟁률을 보인다. 지방 대학생들이 휴학하고 서울 노량진 학원가로 몰려든다.
대학생들을 만나보면서 느끼는 것은 보통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대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매우 현실적이고 계산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도 그런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세상에 공무원처럼 확실한 직장은 없다. 비록 9급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할지라도 60세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대학생들로 하여금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취업난이다.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인적성검사와 면접 같은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스펙을 안 본다고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 파악할 길이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
아마도 대학생들이나 부모들이 공무원을 선호하는 큰 인센티브는 공무원연금제도일 것이다. 퇴직 후 일반 시민은 생각할 수 없는 고액의 연금을 사망 시까지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공무원은 정년이 없는 그야말로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나돈다. 사회경험이 많은 부모들, 특히 지방의 부모들은 대학생 자녀들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압력을 가한다.
옛날에 비해 대우 좋아졌지, 정년과 연금 보장되지, 연륜이 쌓일수록 공무원의 끗발이 세어진다는 것을 아는 부모들은 공무원보다 좋은 직업이 보이지 않는다.
9급공무원 시험에 구름처럼 몰려들어
대학 당국이 9급 공무원시험 합격자 명단을 학교 벽에 크게 내거는 것은 대학 교수들의 마음도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는 어제 공무원의 위상을 말해주는 두 가지 소식을 접했다. 하나는 관보에 실린 공무원의 평균 연봉이고, 또 하나는 여야가 한때 합의했던 공무원연금개혁안이 무늬뿐인 개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개혁이 무산된 것이다.
최근 관보에 의하면 우리나라 공무원의 2014년 평균연봉은 5604만원이다. 이 액수는 97만명의 중앙 및 지방공무원과 헌법기관 공무원의 세전(稅前) 연간 총소득을 공무원 숫자로 나눈 수치다. 정부의 공무원 봉급조견표를 보면 갓 임용된 9급 공무원은 연봉 2000만원에도 훨씬 못 미친다. 그러나 상용근로자 3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의 평균연봉이 5791만원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의 급여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공무원 연금개혁은 국가적 과제다. 공무원이 부담하는 액수의 3배에 이르는 연금지급은 재정적자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다. 어느 정권이든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과 한때 합의했던 결과는 상식인의 눈으로 보면 실망이다.
공무원 연금 논의는 마치 원숭이를 상대로 조삼모사(朝三暮四)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수술이 필요한 환부를 메스로 갈라놓기만 하고 다시 봉합하고는 수술을 했다고 우겼던 것은 아닌가.
헌법이 규정한 평등권에도 맞지 않아
옛날 얘기이긴 하지만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현명한 군주라면 현재의 문제들뿐만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문제들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하며 그것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 대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알아차리게 된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말하는 질병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에도 해당된다. 즉 질병은 초기에는 진단하기 어려우나 치료하기는 쉽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진단은 쉬우나 치료하기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잘못된 공무원 연금이 초래할 국가적 곤경은 전쟁이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에 비하면 예측이 명료한 일이다. 병에 비유하면 초기 진단이 가능한 사안이다. 명확한 진단이 내려진 일인데도 수술을 미봉으로 하고 미래 세대에게 짐을 미루려는 정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젊은 공무원들이 월급을 많이 받기를 기대하지만, 나라의 빚으로 연금을 많이 받는 것은 정의롭지도 않고 헌법이 규정한 평등권에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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