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중국과 남극의 만남

구상낭 2022. 12. 22. 12:36

2015-05-19 12:04:22 내일신문게재

 

 

중국의 시진핑(習近平)주석이 작년 가을 호주의 타스매니아 섬을 방문했을 때의 행적이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보도되었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중국의 세계 전략을 엿볼 수 있는 기사였다.

시 주석은 호주 정부와 협정을 맺고, 남극 항해를 하는 중국 선박과 항공기에 연료와 식량공급이 가능하도록 하는 약조를 받아낸 것이다. 아마 호주는 자원수출의 대가를 받아냈을 것이다. 시 주석은 이어 타스매니아를 방문했고, 때맞춰 중국 과학자를 태우고 남극으로 가다 이 섬에 기항한 중국 쇄빙선 선상에 올라 "아직 인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중국의 영역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연설했다. '21세기의 중국'과 '21세기의 남극'이 어떤 어울림으로 부상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남극 대륙의 면적은 1400만㎢. 러시아보다는 작지만 중국, 인도, 베트남, 한반도와 일본을 합친 것만큼 넓다. 이렇게 넓은 대륙이지만 98%가 평균 두께 1500m의 얼음으로 덮여 있다. 기후학적으로 보면 남극 대륙은 평균기온 영하 57도에 강수량이 200㎜도 안 되는 세계 최대의 사막으로 분류된다.

200년 전만 해도 남극 대륙을 본 인간은 없었다. 19세기 노르웨이인과 영국인 러시아인을 필두로 유럽 사람들이 이 대륙을 탐험하기 시작했고, 100여년 전 노르웨이의 아문젠이 남극점을 처음 밟았다. 그 이후 유럽과 미국의 탐험가들이 이 얼음 대륙을 뒤지면서 각국이 다투어 곳곳에 과학기지를 설치했다.

오늘날과 같이 영토에 대한 국가적 집념이 극에 달한 세상에서 남극을 지배하는 국가도 없고 영유권 분쟁도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이유는 남극이 북반구 문명권에서 너무 떨어져 있고, 극한 기후로 인간거주 환경이 못 되는 데다 1959년 서구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남극조약'이라는 신사협정을 맺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석유자원을 비롯한 지하자원의 보고

남극조약은 미국의 주도로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호주 칠레 러시아 벨기에 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하여 체결했고, 현재 46개국이 조약 당사국으로 서명했다. 조약의 골자는 어느 나라에도 남극 대륙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인류의 마지막 보고(寶庫)로 보전하기 위해 핵실험을 포함한 군사행동의 금지와 광물 자원 채굴 금지를 규정하는 한편 과학적 연구를 지원하고 생태 환경을 보존하도록 했다.

남극조약은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조약 체결국과 서명국들은 국력과 지리적 이해관계에 따라 남극에 과학기지를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1985년 첫 기지를 건설한 중국은 이미 4개의 기지를 운영 중이며, 최근 5번째 과학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말뚝을 하나하나 늘려나가는 형국이다.

탐험과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인류의 미개척지로 남은 남극 대륙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우선 에너지 및 식량자원 고갈에 직면한 인류에게 남극 대륙은 석유를 비롯한 지하자원의 보고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남빙양의 크릴은 미래의 단백질 영양 공급원으로 잠재력이 크다.

남극 대륙의 또 다른 중요성은 빙산이다. 고립된 남극 대륙의 거대한 빙하는 지구의 기후시스템을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말한다. 지구가 더워져서 남극 빙하가 다 녹는다면 광화문이 바닷물에 잠길 정도로 인류는 위기를 맞는다.

중국이 남극에 전략적 관심을 갖는 것은 G2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로서 당연하다. 그렇지만 기존의 체제를 지켜오던 미국은 불편하다. 중국과 경쟁 관계를 느끼는 미국을 비롯해서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남극 진출에 다분히 민감하다. 미국이나 호주는 재정 상태 때문에 남극 진출 예산확보가 어려운 반면, 중국은 경제력을 업고 남극 진출에 적극적으로 돈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남극조약 만료되는 2048년 이후 포석

남극은 21세기 중국이 절대 부족한 자원, 즉 에너지, 식량, 물을 보유하고 있다. 남극 대륙의 석유자원과 남빙양의 크릴(새우 종류)은 중국으로선 매력적인 요소다.

또한 남극 대륙은 중국이 가장 절실한 수자원, 즉 빙하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은 최근 '극지연구소'의 조직을 확대하고 자원, 법, 지정학, 남북극 거버넌스에 대한 통합적 연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시진핑이 호주를 방문하여 남극 진출의 길을 닦은 숨은 뜻은 무엇일까. 남극조약은 2048년에 만료되니 그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는 원려심모(遠慮深謀)로 보인다. 그 때 세계는 어떻게 변하고 남극조약체제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지하자원 채굴을 금지한 현 남극조약을 놓고 과연 중국은 가만히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어쩌면 자원에 갈증을 느끼는 중국은 다른 생각을 하며 조약의 변경을 주도할지 모른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