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공기업이 뭇매 맞는 이유

구상낭 2022. 12. 7. 12:12

내일신문 2013-10-23 15:14:35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신문 지면을 크게 차지하는 뉴스가 있다. 공기업의 '방만경영' '낙하산 임원인사' '빚잔치'가 여론의 도마에 오른다. 그리고는 국정감사 기간이 끝나면 이 이슈는 스르르 꼬리를 감춰버린다. 올해도 공기업 문제가 신문에 요란스럽다. 노조의 '고용세습'이라는 비난의 딱지가 하나 더 붙었다.

한국전력은 올해 빚이 4조6000억원이 늘어나 누적 부채총액이 59조 5000억원에 이르렀다.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이해해 줄 수 있다. 공기업은 사기업과 같은 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한전이 2010년부터 3년간 무상 학자금 584억원을 직원에게 지원했고, 2009~2010년 입사한 신입사원의 연봉을 2년 동안 60% 이상 올려줬다는 대목에선 어안이 벙벙해진다. 어떻게 1인당 연간 부채증가액이 2억3800만원이나 되는 공기업이 빚잔치를 벌일 수 있을까.

공기업 중 부채순위 1위는 한국토지주택공사로 올해 부채증가액이 9조7000억원이고 누적부채총액은 무려 147조8000억원이라고 한다. 이런 회사가 정원(6100명)의 거의 10%에 이르는 584명을 더 고용하고 있다. 정부 고용정책에 큰 기여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올해 직원 1인당 빚 증가액이 15억원에 이르는 판에 이럴 수 있을까.

공기업들의 변명은 한결같다. 원가를 반영해 요금을 올릴 수 없으니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노사합의 사항이기 때문에 사원복지제도를 쉽게 바꿀 수 없어 복지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변명을 들으면 공기업의 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공기업은 295개에 이른다. 이 중 굵직한 10대 공기업을 꼽으면 한국토지주택공사, 한전, 가스공사, 도로공사, 한국수력원자력, 석유공사,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수자원공사, 농어촌공사이다. 이들 10대 공기업이 부채는 작년 345조원에서 올해 28조원이 더 늘어나서 373조원이 된다.

빚더미 부실기업이지만 신용등급 A+
기획재정부의 2013~2017년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이들 10대 공기업의 부채는 계속 늘어나 2017년에 421조2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들 공기업들은 국제 신용평가 기준으로 보면 투기등급, 즉 부실기업이다. 고금리를 제시하지 않으면 자금을 더 이상 조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두 개나 갖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S&P와 무디스로부터는 A+의 신용등급을 부여받았고, 국민들로부터는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A+는 바로 한국의 국제신용도와 같다. 공기업이 아무리 빚을 진다 해도 결국 한국정부가 갚아줄 것이기 때문에 높은 평가점수를 받는 것이다. 빚더미 위의 공기업이 소위 '신이 내린 직장'이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대학 졸업생들이 재수 삼수 하면서 공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는 이유는 고액 연봉에다 정년이 철저히 보장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사기업이 이런 빚더미에 앉아 있다면 젊은이들이 찾아올 리가 없다. 공기업이기 때문에 망하지 않을 것이고, 정부예산을 부어서라도 봉급수준을 유지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빚은 갚아야 한다. 갚지 못하면 보증인이 대신 갚아야 한다. 너무나 명명백백한 이치다. 공기업이 못 갚으면 끝내 정부가 예산에 반영해 갚아야 한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국가조직이 너무나 방대하고 예산이 크다보니 공기업 부채에 대해 국민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오히려 공기업은 천문학적 적자규모에 둔감해진 숫자감각을 업고 흥청망청 쓰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올해도 국정감사 기간이 지나면 공기업의 방만경영 문제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출 것 같다. 이미 공기업을 이끄는 집단의 문화에는 공직윤리는 고사하고 염치가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다. 어느 한 두 사람이 고치자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정치권 전리품으로 전락한 공기업
공기업 방만경영의 큰 원인은 권력이 가장 집중된 한국사회의 지배계층, 즉 정치권과 관료사회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공기업은 이미 정치권의 전리품이 되어버렸다. 정권이 교체되면 승리자의 진용으로 공기업 임원이 교체되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다.

변화와 개혁을 하려고 공기업 임원이 되기보다는 고소득과 경력관리를 위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또한 공기업 감독 관리권을 쥐고 있는 관료와 공기업은 공생관계가 형성된다. 고위관료들이 퇴직하면 취업하기에 가장 아늑한 곳이 공기업이다.

능력 있는 정치권 인사와 관료의 공기업 경영 참여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기업 고위직이 그들의 배타적 기득권이 되다보니 정신적 부패와 그에 따른 폐단은 극단에 다다른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