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원자력은 정치권력서 빼라

구상낭 2022. 11. 23. 12:36

내일신문 2012-12-18 18:40:11

 

'예비전력' '블랙아웃' '400만㎾'. 겨울이 깊어질수록 매스컴에서 수없이 듣고 보게 될 단어들이다. 그렇지만 일반 시민들은 조금만 더 추워져도 전기난방 스위치를 켜고 말 것이다. 전기 값이 지금처럼 싸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코드를 통해 전기를 마음대로 끌어다 쓰지만 공급할 수 있는 전력량은 한정적이다. 현재 한국의 전력 공급능력은 약 7,800만㎾이다. 전력 공급능력에서 현재의 전력 사용량을 빼면 예비전력이 남는다. 이번 혹한에 예비전력은 '관심' 경보가 발령되는 400만㎾ 밑으로 몇 번이나 곤두박질쳤다.

전력당국은 전력수급비상 상황을 5단계로 나눠 경보를 발령한다. 예비전력이 500만㎾ 미만으로 떨어지면 '준비'경보, 400만㎾ 미만일 땐 '관심'경보, 300만㎾ 미만엔 '주의'경보, 200만㎾ 미만에 이르면 '경계'경보, 100만㎾ 미만으로 푹 떨어지면 '심각'경보를 내리게 된다. '관심'경보(400만㎾ 미만)가 발령되면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할 가능성을 염려하여 전력당국이 공급 조절에 들어간다.

요즘 발전소 하나만 고장 나도 심각할 수밖에 없다. 표준 원자로 1기의 전력 생산량이 약 100만㎾이다. 예비전력이 400만㎾ 이하로 푹푹 떨어지는 상황에서 원자로 1기가 고장으로 멈춰서면 블랙아웃을 걱정하게 된다. 전력당국이 원자력 발전소의 상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이런 판국에 최근 울진, 영광, 고리 원자력 발전소에 대량의 짝퉁 부품이 무려 1만개나 조달되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원자력 시설이 필요로 하는 부품에는 품질검증기관이 테스트를 거쳐 발행한 품질검증서가 부착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 부품생산 업체나 수입부품 조달업체들이 위조한 품질검증서를 붙여 공급했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가짜 품질검증서가 버젓이 붙은 가짜 부품을 원자력시설에 부착하고 가동시킨 것이다.

한수원 직원과 업자가 짠 사기극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민관합동조사단에 의해 짝퉁 부품조달 사실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밝혀지면서 울진·영광·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들이 멈추어 섰다. 지금 부품 문제 또는 고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자로가 6기에 이르고 있다. 모두 23기의 원자로 중 1/4이 멈춰 선 것이다.

한수원은 속아서 짝퉁부품을 들여온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수원 직원이 부품업자와 결탁하여 정품이 아닌 불량 부품을 구매한 경우도 있다. 블랙아웃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 치고는 기가 막힌 일이다.

'원자력 강국'을 자임하는 한국의 원자력발전 분야, 그것도 원자로 수출을 위해 대통령이 세일을 나서는 나라에서 한수원 직원과 업자가 짜고 사기극을 벌이는 야바위판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한국은 원자 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않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스스로 '원자력 강국'을 자임하고 나섰다. 아마 2010년 아랍에미레이트로부터 200억 달러 규모 원자력발전소건설 공사계약을 따내면서, 정부가 앞장서서 분위기를 잡고 관련업계가 붙여놓은 이름인 듯싶다.

'핵'과 '원자력'은 원래 같은 말이지만 세월이 가면서 뜻이 달라졌다. '핵'이라고 하면 무기를 연상하게 되지만, '원자력'이라 하면 발전소를 연상하게끔 우리의 용어사용은 변천했다.

23기의 발전용 원자로를 운영 중인 한국은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의 원자력에너지 국가이다. 그러니 핵 강국에는 한국이 낄 수 없지만, 원자력 강국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양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전력공급의 30%를 담당하면서 핵 누출사고와 폐기물처리의 어려움을 안고 있는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가 원자력이다. 원자력에너지는 극도의 전문기술과 운전의 안전성이 요구되는 분야다. 이런 환경을 이용하여 원자력 분야는 기술과 비밀의 성채를 쌓아 왔다.

극도의 전문성과 안전성 요구되는 분야

이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더불어 정책적 고민을 해야 한다. 마침 새 대통령이 선출되어 정권이 바뀌는 것과 상응하여 원자력발전 및 그 안전 정책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기회가 온 셈이다.

제도적, 인적 수술을 해야 할 대상은 두 가지 분야가 아닌가 싶다. 원자력발전 분야인 (주)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다. 이 두 분야만은 정치성이 배제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원자력발전소의 임직원 자리가 정치권력 창출의 공로자에게 포상하는 자리로 전락시킨다면 이것은 전기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핵폭탄을 제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노후 원자로가 마구 쏟아져나올 판인데 원자력발전소가 야바위꾼들의 놀이터가 돼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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