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고래 싸움이 벌어질 터인데

구상낭 2022. 11. 17. 12:46

내일신문 2012-11-19 16:46:00

 

"대부(God-father)를 포함해 할리우드 영화를 즐긴다."

중국 공산당18차당대회에서 선출된 정치국상무위원 7인을 소개하는 뉴욕타임스 프로필 기사의 팩토이드(factoid) 난에 게재된 시진핑(習近平)에 대한 내용이다.

'팩토이드'는 확인되지 않으면서도 일반적으로 사실처럼 인정받는 기사를 말한다. 다른 상무위원의 팩토이드 난에는 굵직한 경력을 소개하면서 하필 영화 '대부'얘기를 했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혹시 중국의 최고 권력자에게서 미국에 대한 관심 또는 흥미를 찾아보려는 편집자의 의도 같은 것은 아닐까.

한국이 쳇바퀴 도는듯한 대선 논쟁에 빠져 있는 동안, 세계는 큰 전환의 시대로 성큼 문지방을 넘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1월 6일 실시된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향후 4년간 펼칠 미국의 세계 전략 손질에 들어갔고, 그 열흘 후 중국 공산당 18차당대회에서 시진핑이 총서기에 선출되면서 떠오르는 중국의 세계 전략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오바마의 재선이나 시진핑의 등장은 이미 예견되어온 일이긴 하나 막상 두 강대국이 지도체제를 마무리하고 나서니, 마치 21세기의 대양에 거대한 두 마리의 고래가 상대를 의식하며 헤엄치는 형국이 되었다. 중국이 몸체를 불리고 대양으로 헤엄쳐 나오는 고래라면 미국은 혼자 헤엄치던 대양에 나타난 적수를 보고 경계심을 잔뜩 품은 고래에 비유할 수 있다.

시진핑이 통치하는 중국은 덩샤오핑이 지배했던 중국이나 10년 전 후진타오가 물려받았던 중국과는 달라졌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9월 시진핑 시대를 예고하는 기사에서 "미국은 역사상 가장 자신감에 차 있는 중국의 지도자와 상대해야 할 것"라고 전망했다. 그건 경제력에 바탕을 둔 중국의 힘이 한없이 세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의 판도는 조용히 그러나 무섭게 변했다. 일본은 제2경제대국의 자리에서 밀려났고, 그 자리를 중국이 꿰차면서 세계의 경제 판도를 급속히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G2시대로 만들었다.

아시아지역 세력 확산 도모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약 7조2000억달러(2011년)로 미국의 14조8000억달러의 절반에 육박했다. 중국은 2020년까지 GDP를 2배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GDP규모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의지다. 세계의 경제전문가들은 이 수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덩샤오핑은 텐안문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혼란을 겪은 후 20년에 걸친 후계구도를 '장쩌민 10년 후진타오 10년'으로 짜 놓고 스스로 권좌의 높이를 낮춰나갔다. 이 때 덩샤오핑은 중국 지도자들에게 '24자 전략'을 내렸다. 신중하게 관찰하라(冷靜觀察). 우리의 입지를 확보하라(穩住陣脚). 사태에 침착하게 대응하라(沈着應付). 우리의 능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려라(韜光養晦). 저자세를 유지하는 데 능숙해지라(善于守拙). 절대로 리더십을 주장하지 말라(絶不當頭).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전략가들은 덩샤오핑의 '24자 전략'은 미국에 초점을 둔 세계 전략으로 간주한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들은 시진핑이 통치할 향후 10년은 후진타오가 통치한 과거 10년과 아주 다른 세계 전략에 기초를 둘 것이라고 예측한다. 후진타오 10년의 대외전략은 자원외교였다. 그러나 시진핑 시대의 대외전략은 중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아시아 지역에서의 세력 확산을 꾀할 것이라고 예견된다. 이런 전략을 뒷받침하는 것이 경제력을 기초로 한 군비확장이며 중국은 역사상 최초로 항공모함을 취역하는 등 눈에 띄게 그 길로 가고 있다. 중국은 이제 능력을 감출 필요도 없어졌고 감출 수도 없게 된 셈이다.

시진핑은 18차당대회에서 예상과는 달리 총서기뿐 아니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사실상 중국 권력의 핵심인 군과 당을 동시에 장악한 것이다. 후진타오는 10년 전 총서기가 된 후 2년을 기다려서야 정쩌민으로부터 그 자리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무서운 중국 지도자'로 떠오른 시진핑

시진핑은 미국의 리더십에 매우 도전적이라는 게 양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2월 워싱턴을 방문한 시진핑은 '새로운 형태의 중미관계'를 언급했고, '핵심적 이해문제에 대한 상호존중'을 강조했다. 미국에게 시진핑은 "무서운 중국 지도자"로 부상한 것이다.

아시아의 향후 10년은 시진핑과 오바마가 그리는 그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어쩔 수 없는 종속변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으려면 한국의 지도자가 깊이 고민해야 하고 국민도 지혜로워져야 한다. 차기 한국 대통령의 외교적 리더십이 참으로 무거울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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