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검사의 亂

구상낭 2022. 11. 23. 12:36

내일신문 2012-12-03 15:54:39

 

한상대 검찰총장사퇴 파동은 검란(檢亂)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법조계는 물론 일반 시민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10억 뇌물 수뢰 검찰간부의 처리문제를 둘러싼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의 대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착수 발표, 중수부장의 반박 성명 발표, 대검간부들의 심야회의와 총장퇴진 결의, 서울지검부장검사들의 총장 시한부 사퇴촉구, 총장의 검찰개혁안 사표제출 계획 공개, 검사들의 "물러나는 총장의 개혁안 발표 적절치 않다"는 반발 확산, 검찰총장 사퇴. 신문에 보도된 지난 목요일(11월28일)부터 3일간 검찰에서 긴박하게 벌어졌던 일이다.

검찰 수뇌부의 언행과 그 분위기를 스케치한 여러 신문의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까마득하게 흘러간 두 사건이었다. 하나가 12·12사태이고, 또 다른 하나가 2003년 '노무현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 해프닝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18년 장기집권의 종지부를 찍었지만 대통령의 유고사태는 권력의 공백, 즉 사실상 무정부상태를 불러왔다. 당시 군은 지배엘리트계층이었고 정권은 군으로부터 나오며, 군이 정권을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군부의 엘리트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회 중심의 소수 장성들이 12월 12일 하극상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던 게 12·12 사태이다.

리더십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정했던 김영삼 대통령이지만 정말 잘했다는 일반적 평가를 받는 것이 군 정치개입의 싹을 발본색원했다는 점이다. 수십 년에 걸쳐 뿌리 깊게 군을 지배하던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한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대수롭지 않아 보이나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서는 과단성 있는 조치였다.

지금의 검찰을 당시 정권을 농단했던 군과 비교해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의 레임덕이 극에 달하는 정권교체기를 맞아 권력 지향적 조직문화와 엘리트의식으로 굳어진 검찰 내부의 갈등이 흘러넘쳐 나온 것이 이번 검란의 단면이란 점에서 권력 집단의 유사성을 볼 수 있다.

노무현 방식 검찰개혁은 실패

'노무현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는 2003년 봄 파격적인 강금실 법무장관 임명을 서곡으로 한 참여정부의 검찰 인사에 반발하는 검사들을 상대로 직접 대화하겠다고 대통령이 나선 일이다. 검찰 권력의 비대화와 부패 문제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 시점에서 반추해보면 검찰의 기를 꺾어보려는 노무현 식 검찰개혁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 때 국민들은 이런 식의 대통령 리더십에 비판적 시각이 많았지만, 조직에 대한 자존감으로 꽉 찬 검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때 검찰인사의 독립성을 요구하던 젊은 검사들의 기백이 인상에 생생하다. 대통령의 입에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을 몰아세웠던 검사들이 이번 검란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영삼 대통령의 하나회 척결이 성공했던 것과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 방식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사회의 모든 기득권 세력에 각을 세우고 개혁의 칼을 여기저기 난삽하게 댔던 노무현식 개혁이 갖는 문제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검찰개혁의 필요성이 지금처럼 확연하게 국민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검란 사태로 검찰 개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검찰의 부패, 수사권과 기소권의 독점에 의한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의 집중화, 직급인플레 등 이제 국민이 용인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개혁이 검사들의 손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국민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스스로 자정하고 절제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검찰 개혁과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검찰의 중립성 보장 문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검찰 되도록

오히려 이번 검란 사태는 때를 잘 만나 곪아 터진 것인지도 모른다. 보름여 후면 새 정부를 구성할 차기 대통령이 선출된다. 정부조직을 개편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마침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어제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검찰개혁 공약을 긴급히 내놓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기존의 검찰조직과 권한을 그냥 존치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부분이 크다. 정파적 입장에서 만든 공약에 의거하여 새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추진할 때 절반의 정치세력이 반대하면 검찰개혁은 다시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당선 후 상식적 판단력을 가진 검사의 의사가 반영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여과 과정을 거친 개혁안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든 문재인 대통령이든 검찰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제 위치에 올려놓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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