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그룹

석유의 세 얼굴

구상낭 2022. 11. 7. 12:22

2010-05-06 00:30:25

 

또 미국에서 석유가 말썽입니다. 지난 4 20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멕시코만 해상에서 BP(영국석유) 소유 석유시추시설이 폭발하면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파손된 파이프를 통해 해저 1,800미터의 유정에서 하루 5천 배럴(80만 리터)의 원유가 바다 속에서 분출되고 있습니다.

 

바닷물보다 가벼운 원유가 해수면으로 떠오르면서 1,600킬로미터에 이르는 미국 남부 해안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태안반도 유조선 기름 유출사고에서 우리가 목격했듯이, 기름띠가 지나가는 곳은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해변을 덮친 기름 찌꺼기는 수십 년 동안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 남부 해안을 낀 4개 주는 지금 초비상 상태입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환경재앙을 경고하며 이곳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을 정도입니다.

 

해저 수천 미터 땅속의 유전을 찾아내어 시추시설을 세우고 석유를 뽑아 올리는 것은 찬란한 현대 기술의 개가입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원유 유출을 즉각 정지시키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은 시추기술에 훨씬 못 미칩니다. 천안함 침몰사태에서 보았듯이 현대 과학기술일지라도 해류,  조류, 파도가 심술을 부리는 바다 속에서는 통제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1989년 미국은 알래스카의 발데즈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사고로 십수년에 걸쳐 생태계의 황폐화를 목격했고, 그 기름띠와 찌꺼기를 제거하느라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이번 멕시코만 원유 유출은 언제 멈출지 모릅니다. 유조선에서의 유출보다 훨씬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사태를 1이닝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9이닝이 끝날 즈음에는 그 폐해가 어떻게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번 기름 유출사고가 난 지역은 바로 5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폐허화된 뉴올리언즈 인근입니다. 미국인에게 카트리나는 곧 환경재앙을 연상하게 하는 모양입니다. 미국 언론은 이번 기름 유출사고를 일컬어 오바마의 카트리나라고 별명을 붙입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왔을 때 부시가 대처를 잘못해서 곤경에 처했던 점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미국은 20세기 석유문명을 선도해온 나라답게 원유 유출사고에서도 악명이 높습니다. 발데즈 유출사고나 발생하기 20년 전에는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 앞 해상 유전이 파손되면서 그 일대 바다가 크게 오염됐으며 그게 계기가 되어 지구의 날이 생겼고 각종 환경규제가 닉슨 정부에 의해 마련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석유 덕택에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10억대에 육박하는 자동차, 수백만 척의 크고 작은 배, 수십만 대의 각종 비행기가 석유를 연료로 움직입니다. 전력을 생산하고 가정과 공장의 에너지로 쓰입니다. 석유를 소재로 한 플라스틱 제품, 섬유류, 의약품 및 화학제품이 없다면 우리 생활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어떤 자원도 석유의 자리를 선뜻 물려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석유는 이렇게 선량한 얼굴만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석유 때문에 일어난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고통 속에 있는지 모릅니다. 이번과 같이 생태계를 초토화하는 원유 유출사고는 기술발전에 따라 점점 대형화합니다. 석유제품이 널리 보급되면서 인류는 환경오염과 각종 질환의 피해에 시달립니다. 무엇보다도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인류문명 자체를 불안에 떨게 합니다.

 

태고의 지질시대에 형성된 석유는 그 형태, 기능, 국제 역학관계에서 천의 얼굴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본질적인 문제는 석유자원이 빠르게 고갈되어 가는 것입니다. 석유 전문가들은 21세기 전반 어느 시점에서 석유 생산이 정점에 이르면서 인류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데 이견(異見)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정점이 20년 남았다는 사람도 있고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으며, 바로 임박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제도의 조선소에서 35만 톤짜리 유조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화물로 취급하면 500만 명을 실을 수 있다는 게 조선소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매일 이만한 배 한 척씩이 기름을 가득 싣고 입항해야 합니다.

 

중동 산유국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산에든 바다에든 시추구멍을 뚫었다가 그게 터져 난리를 겪는 미국입니다.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석유 소비국입니다. 석유가 어느 날 어떤 모습의 얼굴로 우리나라에 나타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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