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그룹

별들의 죽음

구상낭 2022. 11. 7. 12:14

 

 

천안함 침몰사태로 48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선체와 함께 차가운 바다 속에 가라앉으며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들을 구조하러 바다 속으로 뛰어든 UDT대원이 죽고, 조난 현장 구조작업에 참가했던 쌍끌이 어선이 다른 선박과 충돌하면서 선원 8명이 실종됐습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더니 죽음이 죽음을 부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에 생초상을 보는 마음이 아픕니다. 가뜩이나 청년이 귀해지는 나라에 젊은이가 이렇게 많이 죽다니 사회적 손실도 크지만, 유가족들의 슬픔과 애석함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해줄 수가 없습니다.

벚꽃이 제주도에서 진해를 거쳐 서울로 북상하고 있습니다. 대개의 꽃이 그렇지만 벚꽃은 순식간에 활짝 피었다가 지고 맙니다. 올해따라 숨진 병사들의 모습이 마치 바람에 흩날려 흩어지는 벚꽃 이파리와 같아 보입니다.

바람 부는 날 벚꽃이 떨어져 아스팔트 위에 흩어지는 것을 보면 생명의 아름다움이란 것이 얼마나 찰나적이고 부질없는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올봄은 삶보다는 죽음을 더 많이 생각하는 계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년과 올해는 우리 귀에 오래 익숙했던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대통령, 종교계의 큰 별인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스님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작곡가 박춘석씨가 세상을 하직했고 천안함 비극의 와중에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 누나와 같은 자살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아폴로박사로 유명한 천문학자 조경철씨도 타계했습니다.

젊은이의 죽음은 애석하고, 나이든 사람의 죽음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죽음의 모습에 따라 슬픔과 애석함의 강도는 다르지만 그들 모두 더 이상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숨 쉴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를 공허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죽음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특권일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밤하늘을 쳐다보며 유성이 은하수를 가로지르며 사라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른들은 흐르는 유성을 보며 ‘누군가 또 한 사람이 세상을 떴구나.’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동ㆍ서양이 공히 사람의 운명을 하늘의 관할 하에 두었고 점성술이 발전했습니다. 삼국지에선 ‘오장원에 떨어진 별’을 보며 제갈공명의 죽음을 말합니다.

철이 들어 별똥별이 생기는 이치를 알게 되면서 유성과 사람의 사멸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죽음을 자주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되니 별의 소멸에서 과학적 은유를 찾게 됩니다. 유성을 보면 어릴 때처럼 누군가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도 저 유성처럼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 적이 언제였습니까. 서울 하늘에선 이제 은하수를 볼 수 없습니다. 별들도 큰 것이 아니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서울의 밤은 옛날과 같은 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멀리 벗어나면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과 같이 유성도 보이고 은하수도 보입니다.

이 자유칼럼의 글을 매일 읽는 독자 중에 오종남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통계청장과 IMF 이사를 지낸 경제관료 출신으로 지금은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입니다. 그가 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의 ‘과학기술혁신 최고전략과정’의 주임교수를 맡고 있는데 이 코스의 과학 강의를 들으면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과학 강의라는 말에 주눅이 들어 망설이다가 몇 편의 과학 강의를 듣는 별난 경험을 갖게 됐습니다.

과학 강의 중 하나로 천문학자 이명균 교수의 ‘빅뱅’ 강의가 있었습니다. 이 교수는 서두에 빅뱅의 존재함을 확실히 증명해 보이겠다고 진지하게 말해 잔뜩 기대에 부풀게 하더니 파워포인트 화면에 5인조 힙합댄스 그룹 ‘빅뱅’의 사진을 비추고는 “예, 빅뱅은 이렇게 확실히 존재합니다.”고 말해 웃겼습니다. 구름 잡는 이야기 같은 천문학 강의를 기성세대를 상대로 하려고 하니 그 나름대로 재미를 유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빅뱅, 퀘이사, 블랙홀, 초신성, 은하계, 암흑에너지, 혜성, 광년, 타임머신 등 설명을 들으면 알 듯 모를 듯하다가 듣고 나면 기억에서 가물가물 사라지는 별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 별과 별 사이를 관측해서 찍어낸 각양각색의 은하계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생성소멸에 관한 설명을 들으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우주란 참 기묘하고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도 엄마 품에서 태어나서 늙고 끝내는 죽는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초신성은 푸른 빛이 돌고, 중년이 되면 노란 빛이 되었다가, 늙어 죽을 때는 적색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은하수 저 너머 붉은 색 별이 지구까지 빛을 보내는 데는 몇 십 또는 몇 백 광년(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이 걸린다니 이미 그 별은 블랙홀이 되어 소멸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인간도 청소년기에 뽀얀 얼굴을 가졌다가 나이가 들면 주름지고 검붉은 색깔을 띠게 되니 수명만 다를 뿐 생성소멸의 과정이 비슷합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몸은 우주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우주의 원소가 하나하나 모여서 빚어진 것이 인간이니 그렇게 소중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그 심오한 이야기를 들으면 참 내 몸이 비싼 존재구나 하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에 “인간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고 써 놓았습니다. 수 억 년 동안 반짝이는 별의 눈으로 보면 인간이 20년을 살건 100년을 살 건 찰나에 불과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살이의 눈으로 보면 인간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며 사는 무한한 존재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영향을 크게 끼친 사람이 죽으면 “큰 별이 졌다.”고 하는 말은 지구 위에서 아옹다옹하면서 만들어낸 개념일 뿐입니다. 천안함에서 사라져간 장병들이나 유명하게 살다간 사람들이나 우주의 시야에서 보면 모두가 똑 같이 지구위에서 한 순간 아름답게 빛나다가 간 별들입니다.

별 이야기를 듣다보면 잠시 지구에 거처하는 우리의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또한 인간 누구에게나 순간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자유칼럼 2분산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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