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북한의 ‘경제 강국’ 꿈

구상낭 2024. 1. 2. 23:00

2019-03-04 12:18:53 게재

 

1984년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이 채택된 지 5년이 지났지만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나라는 황폐화하고, 중국 인구 75%가 극빈상태였다.

그해 가을 중국 저장성(浙江省) 모간산(莫干山) 국립공원의 대나무 숲속에 있는 리조트에서 젊은 경제학도들이 심포지엄을 갖고 있었다. 토론 주제는 ‘중국은 서양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였다.

여러 날 밤을 새며 토론을 벌이던 이들 젊은이들은 어느 날 결론에 도달했다. “공장은 국가가 정한 할당량을 의무적으로 생산해야 하지만, 잉여 생산량이 나오면 스스로 가격을 매겨 팔 수 있게 하자.”

당시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 아래서 35년을 살아왔던 중국인들로서는 경천동지할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 젊은이들이 심포지엄에서 내린 결론은 그 이듬해 중국 공산당의 정책이 되었다. 이 제안이 극빈국가 중국을 오늘날 미국과 맞먹는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바꾸어 놓은 결정적 동력이 되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극빈 인구가 1%로 줄어들었다. 주택보유자, 인터넷이용자, 대학졸업자, 억만장자의 숫자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가 됐다.

그때 심포지엄에서 참여했던 엘리트 청년들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전위대가 되어 중국 경제를 이끌었다. 전 베이징 시장이자 중국 부주석인 왕치산(71.王岐山), 전 재무부장 루지웨이(69.樓繼偉), 전 인민은행총재 저우샤오촨(71.周小川)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당시 중국 정부의 관리로 이 심포지엄에 파견됐고 나중에 중국 최초의 증권 시장을 선전(深?)에 개설할 때 중추적 역할을 했던 수징안(徐景安)은 “나는 그때 토론을 들으며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게 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한다.

위 일화는 작년 11월 뉴욕타임스의 중국 특집 기사 첫머리에 나온 이야기다. 이 글을 보면서 문득 북한이 생각났다. 그리고 비전문가의 상상력을 동원해봤다. 김정은이 경제개혁을 위해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정책을 쓴다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김정은이 덩샤오핑처럼 경제개혁의 그림을 그리고 실행할 수 있는 경제개혁 엘리트 집단을 양성하고 있을까.

‘중국은 서양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중도 결렬로 핵협상은 미궁에 빠졌지만, 언젠가 다시 협상은 재개될 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경제발전이 중국식 모델이냐 베트남식 모델이냐가 다시 화제가 될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틈만 나면 “북한은 경제 강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도울 수 있다”고 트윗 문자를 날렸다. 이것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설득하기 전략적 수사(修辭)였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런 표현을 쓰게 된 동기는 1차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본인으로부터, 그리고 그 후 김영철 북한 특사나 문재인 한국대통령을 통해 북한의 당면과제가 경제발전이며 이를 위해 핵 폐기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수없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순진하게 생각해본다면, 한반도의 남쪽은 세계에 일곱개 나라밖에 없는 3050클럽(국민소득3만달러-인구5000만)에 들어간 반면, 북쪽은 보잘 것 없는 경제 낙후국이라는 사실에 기초해서 트럼프가 나름대로 내린 평가일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절박한 의지는 여러 정황으로 포착되고 있다. 그의 신년사와 행동반경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그는 작년 6월 제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중국을 여러차례 방문하면서 부하들을 데리고 산업시설을 방문했고,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에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경제가 변하고 있다. 장마당이 북한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며, 이는 스위스 유학을 한 김정은이 시장경제에 대한 호감이 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이 말해주는 것

김정은도 북한 경제발전의 열쇠는 유엔의 경제제재 해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요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며, 그 전제조건은 핵 폐기다.

김정은이 과연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 과정에서 그가 털어놓은 발언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느끼기에 어느 정도 진정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소감과 통치자로서의 결정은 전혀 다른 것이다.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정책은 신뢰와 함께 검증을 요구한다.

어쩌면 북한의 핵 포기는 상황에 따라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한 동태적 과제일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핵무기가 없는 베트남에서 북한은 경제발전의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국도 했고, 중국도 했고, 베트남도 하고 있는 고도 경제성장을 북한이 못할 리는 없을 것이다. 북한은 남한에 비해 땅도 넓고 자원도 풍부하다. 잠재력을 가진 노동력도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경제발전에 필수 요건이 아니라는 것은 중국과 베트남이 말해준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