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로봇 간호사가 암시하는 미래

구상낭 2024. 1. 2. 22:58

2019-02-14 11:56:49 게재

 

세계는 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진행하고 있다. 고령자는 자신의 일이기에 겁나는 일이고, 젊은이들은 어떤 방법이든 고령자를 돌보아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마음도 어깨도 가벼울 수 없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서일까. 개인의 건강을 챙기는 인공지능 로봇이 4차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유럽 미국 중국 일본에서 로봇간호사 얘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1월 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박람회(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삼성전자가 선보인 ‘삼성봇케어’가 미국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다. 센서가 부착된 로봇 간호사로서, 이를테면 노약자 옆에서 혈압?심박?호흡?수면 상태를 측정해서 정상 여부를 알려주고 약복용도 챙겨준다. 시간이 지나면 ‘삼성봇케어’가 크게 진화할 것임은 인공지능이 발달 속도를 보면 짐작해볼 수 있다.

삼성전자만 로봇 간호사 개발에 나선 건 아니다. 작년 미국의 ‘딜리전트 로보틱스’란 회사는 로봇 간호사 목시(Moxi)를 개발했고, 텍사스 병원에 배치해서 실험 중이다. 이 로봇 간호사는 바퀴가 달려 병실과 수술실에서 이동할 수 있으며 팔로 물건을 집어 나를 수 있다.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일은 하지 않고, 병실의 침구를 갈아준다거나, 간호사가 깜빡 잊고 선반에 두고 온 주사상자를 갖다 주기도 한다. 목시는 간호사가 환자에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병원 업무에 획기적 도움을 줄 것이다.

벨기에 회사 ‘조라보츠’(ZoraBots)가 만든 ‘조라’(Zora)는 괄목할 만한 로봇 간호사다.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한 노인 요양병원에서 진행된 ‘조라’의 근무 실험 결과는 놀랍다. 생김새는 장난감 인형 같은데 인사말을 걸면 대답도 하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깜찍스럽다고 한다. 이 병원이 조라에게 간호사 일을 시키는 이유는 이렇다. 노인 요양병원에는 환자 가족들이 드문드문 찾아오고, 치매 환자 등 시각을 지체하지 않고 돌보아야 하는 노인 환자들은 많다. 그래서 이들 환자를 돌보는 일을 조라를 통해 실험한 것이다.

혈압?심박?호흡?수면 상태를 측정

조라는 환자에게 운동을 따라하도록 시범을 보이고, 게임도 한다. 환자와 대화도 한다. 간호사가 랩-탑을 통해 단어를 입력하면 조라는 이 명령에 따라 말을 한다. 환자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노래도 부른다.

병원은 조라에게 약을 조제하고, 혈압을 재고, 병실 이부자리를 갈아주는 일은 시키지 않는다. 환자에게 음식을 먹이는 일도 못하게 한다. 이런 일들은 환자가 따스한 인간적 접촉을 원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간호사가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서 놀라운 사실은 조라에게 보이는 노인 환자 반응이다. 사실 로봇 간호사가 하는 역할과 행동이야 입력된 정보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지만, 노인 환자들 반응은 인간 간호사들마저 놀라게 할 정도다. 많은 환자들이 조라를 애기처럼 대하고, 껴안아 어르고, 머리에 입을 맞추는 등 감정적 집착을 보인다. 더욱 신기한 것은 환자들이 의사에게도 얘기하지 않던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한 정보를 조라에게는 술술 털어놓는 것이다. 작년 말까지 조라는 전 세계에 약 1000대가 공급됐다고 한다.

로봇 간호사는 여러 가지 기능을 갖고 있지만 감정이 없는 기계다. 반면에 노인들은 몸의 기능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감정을 갖고 있는 인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노인들이 조라에 보이는 감정적인 집착은 미래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는 노령사회로 급속히 이행하고 있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2050년이면 60세 이상 노령 인구가 21억 명으로 늘어난다. 이쯤 되면 노인 인구 증가는 바로 인구 폭탄이 될 것이다. 극도의 핵가족화 시대에 자녀를 하나만 낳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낳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진다. 요양 병원의 로봇 간호사 고용은 시대적 필요성에 대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노인이 사는 가정에 로봇 간호사가 등장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그 이름이 어떻게 붙여질지 모르지만.

로봇 손을 잡고 숨을 거두는 일 보게될 듯

최근 우리나라에도 고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 죽음을 맞는 방법이 세 가지가 될지 모른다. 자식이 임종하는 경우, 혼자 죽는 경우, 그리고 로봇이 임종하는 경우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정든 로봇 손을 잡고 숨을 거두는 일을 혼자 죽는 일보다 행복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로봇 간호사 소유 여부에 의해 노인의 빈부가 판별되는 사회가 올 것만 같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로봇간호사의 기능은 정교해지고 가격도 올라갈 것이다. 본인이 부자이거나 자식의 소득수준이 높으면 좋은 로봇 간호사를 가질 수 있지만, 아주 가난한 사람은 혼자 쓸쓸히 노후를 보내다 숨을 거둘 것이다.

18,000달러(약2000만원)라는 조라의 가격표를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