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1 11:46:57 게재
11월 하순 제주도에 다녀왔다. 3월 중국 당국이 사드 보복조치로 단체관광을 금지한 이후 중국인 관광객은 현저히 줄었지만, 일요일 제주공항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항공기 출발 대합실 좌석을 잡을 수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문득 중국 사람이 오지 않아도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만으로 제주 경제는 돌아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1,249만 명으로 작년 1,345만 명보다 7.1%, 약 100만 명이 감소했다. 그런데 내국인은 같은 기간 오히려 10.4%, 즉 100만명이 증가했다. 내국인 관광객이 100만 명 늘었는데, 전체 관광객 숫자가 100만명 줄어든 것은 중국인 관광객이 200만명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중국인 270만명이 제주를 찾았으나 올해는 68만명만 왔다.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호텔, 면세쇼핑센터, 전세버스 등 관광업계는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나와 얘기를 나눴던 제주도 보통 주민들은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해도 전혀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공항과 거리에서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활개치고 다니지 않아서 좋고, 쓰레기와 유흥가 폭력이 줄어들어서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과수원 등 토지를 가진 주민들은 중국인 관광 붐과 함께 폭등한 부동산 가치를 놓고 심리적 혼란을 느꼈다. 재산가치는 높아졌지만 소득의 증가 없이 1년에 30% 이상씩 오르는 공시지가에 의해 부과되는 재산세가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중국 관광객이 쓰는 돈을 벌어들이는 숙박업소, 면세쇼핑센터, 전세버스 등 관광 업체 사람들을 제외하면 중국인 관광 붐은 주민 소득향상에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관광업소에서 벌어들인 돈은 약간의 세금으로 제주도에 남고 그날로 서울 본사로 가버린다.
제주 관광업계 중국붐 기대로 술렁
제주도의 관광업계와 부동산 업계가 다시 중국 붐을 기대하며 술렁거리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한·중 외교 당국이 공동합의문을 발표하면서 사드 보복이 걷힐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11월 28일 중국의 국가여유국(國家旅遊局)이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여유국이 취한 조치를 들여다보면 마냥 반가워할 수 없다. 첫째, 국가여유국은 베이징(北京)과 산둥(山東)성 지역에 한해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한다고 통고하면서 이마저도 범위를 아주 좁혔다.
즉 여행상품의 인터넷 판매를 금지하고 여행사 대리점을 통한 판매만 허용했다. 또한 크루즈나 전세기 이용을 금지함으로서 사실상 대규모 단체여행을 규제한 것이다. 한국방문 중국인 관광객에서 차지하는 베이징과 산둥성 관광객의 비중은 30%이라고 하니, 경고를 담은 우호의 몸짓을 보인 것이다.
둘째, 국가여유국은 롯데그룹의 시설과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지침을 내렸다. 즉 중국인 단체관광객은 롯데호텔에서 숙박도 못하고 롯데면세점에서 쇼핑도 할 수 없으며 롯데월드도 관람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지역을 제한하는 것과는 차원의 다른 정략적 조치이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기업에 보복하는 척하면서 한국 정부를 겨냥한 압박이다.
작금의 한·중 관계는 넓게는 북한 핵 이슈, 좁게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가안보와 결부된 복잡한 국제정치 거래의 측면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중국은 이 게임에 한국 방문 중국단체관광을 교묘하게 하나의 카드로 밀어 넣고 있다. 정경일체(政經一體)의 전략이다. 이게 민주주의로 숙성된 서방국가와 공산당 일당체제 국가의 다른 모습이다. 사드 보복이 제한적으로 풀리는 이 시점에서 중국 단체 관광객에 편중되어온 한국의 해외 관광객 유치 정책을 반성하고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중국 단체관광객 편중 정책 반성해야
이제 중국인 단체 관광이 허용되면 굶주렸던 한국의 관광업계는 보나마나 중국여행객에게 여행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항공료 숙박비를 대주고 관광객을 끌어다가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사게 하고 수수료를 챙겨 수지를 맞추는 '마이너스투어' 판이 또 벌어질 것이다.
이렇게 해서 중국인을 1000만명을 유치한들 국가경제에 과연 도움이 될까. 여기서 파생되는 한국의 이미지 훼손은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 더욱이 제주도 같은 좁은 지역에 중국인 관광객을 떼거리로 많이 오게 하면 제주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이 골고루 좋아질까.
제주 관광의 미래는 올해 제주에 오지 못한 200만명의 단체 관광객에 집착해서는 찾을 수 없다. 개별적으로 찾아온 68만명의 중국인에게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국가 전체를 놓고 볼 때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은 점점 부자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잘해 주고 정당한 값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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