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끝날 수 없는 탈(脫)원전 논쟁

구상낭 2023. 8. 9. 16:26

2017-11-01 11:47:18 게재

 

 

앞으로 100년 동안 인류 문명을 치명적으로 붕괴할 수 있는 위험상황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대충 세가지 사태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첫째 핵전쟁, 둘째 기후변화, 셋째 소행성과 지구 충돌이 떠오른다.

소행성과 지구 충돌은 우주적 차원의 자연법칙이 미치는 영역이니 인류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반면 핵전쟁과 기후변화는 인류가 만들어 키우는 재앙이다. 따라서 지혜를 모아 대응한다면 핵전쟁도 막을 수 있고 기후변화의 재앙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핵전쟁은 20세기 후반 미소 냉전시대 인류의 잠재적 공포였다.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는 3차대전이 일어나면 이는 핵전쟁으로 비화되어 핵폭발과 방사능에 의해 수억명이 죽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예단했다. 당장 사망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핵구름이 세상을 뒤덮고 태양복사를 막는 '핵겨울'로 멸종할지 모른다는 가상시나리오가 나오곤 했다. 소련의 붕괴로 핵전쟁 위기는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 세계는 다시 핵전쟁 위협을 느끼고 있다. 공포의 균형으로 핵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군사전문가들의 예측에 기대를 하지만 핵전쟁 위험성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핵전쟁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지구온난화, 즉 기후변화의 재앙이다. 남북극의 빙하가 녹아 무너지고 열파 한발 폭우 태풍이 문명을 향해 거세게 밀려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의 텍사스와 플로리다, 그리고 캐리브해의 섬들을 초토화한 대형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는 재난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난 미국 정부도 감당하기 힘들어 했다.

핵전쟁 위기는 핵을 보유한 소수 국가의 정치적 해결로 극복할 수 있지만 기후변화는 다르다. 소수 국가의 정치적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산업, 그것도 국가경제에 밀접한 영향을 지닌 화석 에너지 산업을 줄여야 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에 묶여 있다.

인류문명에 치명적 위험 3가지

그러나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인류문명이 재앙에 직면할 개연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20여년의 협상 끝에 찾은 해답이 195개 유엔회원 국가들이 온실가스배출을 줄여나가자고 합의한 2015년 파리기후협정이다.

한국이 줄여야 할 의무 감축 몫은 2030년 기준 37%이다. 감축노력을 하지 않고 증가하는 대로 두었을 때(BAU) 2030년 배출될 온실가스 총량에서 37%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파리에 가서 약속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취임 후 그 약속을 확인했다.

박근혜정부는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석탄 화력발전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정책을 물려받은 문재인정부는 대통령 선거공약, 즉 탈원전 정책을 들고나왔고, 문재인정부 초반 3개월 동안 정치권은 물론 산업계와 일반 국민들이 탈원전 논쟁에 휘말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원전의 안전성을 문제 삼고 궁극적으로 원전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산업계와 원자력 공학계 사람들은 풍부하고 값싼 전력을 제공해온 원전을 폐쇄하는 것은 산업발전을 저해하고 모처럼 쌓아올린 원자력 기술과 인력을 사장하는 국가적 낭비라고 맞섰다.

정부가 구성한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의 투표로 공사중인 신고리 5,6호기 공사재개를 정부에 권고함으로써 가까스로 논쟁의 확산을 막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5,6호기 공사 재개는 수용하면서 수명연장 가동 중인 월성1호기 조기 폐쇄 등 탈원전 가속 페달을 밟을 태세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선거 공약이다. 세계 최고의 원전 밀도를 가진 동남권 지역에서 대규모 방사능 누출사고가 난다면 부산 울산 포항 등 인구 300여만명의 안전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전과 설득력 갖춘 에너지 프로그램을

그러나 마귀를 내쫓듯이 원전 폐쇄에 속도를 내는 것은 재고할 문제다. 그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원자력에너지는 방사능 누출이라는 위험성과 사용 후 핵연료 처리라는 골칫거리를 안고 있지만 이산화탄소, 즉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원전을 없애면 그만큼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든지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석연료를 사용해야 한다.

기술은 빠른 속도로 진보한다. 획기적인 이산화탄소 포집기술이 개발될 수도 있고, 혁신적인 태양광 활용기술이 나와 에너지문제가 단숨에 해결될지도 모른다. 원자력 기술도 날로 진보한다. 안전하고 폐기물이 적게 나오는 원자로 개발이 연구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기후변화 경제성 안전성을 장기적으로 고려하여 원자력 화석연료 신재생에너지의 포트폴리오, 즉 에너지 배합(MIX)를 제시해야 한다. 산업자원부장관이 비전과 설득력을 갖춘 에너지 프로그램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