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6-07-22 23:31:19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40대 이상의 어른들은 아마 연탄재의 이미지가 가슴에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연탄은 쌀과 더불어 서민 경제의 애환을 상징했다. 초가을이면 햅쌀 값 얘기가, 초겨울이면 연탄 값 얘기가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뒤덮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서울의 아파트 지역 초등학생에게 ‘연탄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대다수 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까 싶다. 석탄을 본 아이들은 더욱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저 교과서에서 잠깐 읽었던 기억 정도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석탄을 기억에서 지우듯이 석탄과 멀어져서 살았던가. 그건 아니다. 연간 8,500만 톤의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쓴다. 지난 5년간 소비가 10% 정도 늘었다. 중국, 인도, 일본에 이은 세계 4위 석탄 수입국이 되었다. 수입 석탄의 60%가 석탄 화력발전소로 간다. 국내 전력 수요의 28%가 53기의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석탄은 화석연료로서 아직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미세먼지가 예민한 사회 이슈가 되었다. 미세먼지가 시민의 나들이 기준이 될 정도로 심각해졌고,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특단의 미세먼지 대책을 요구했다. 미세먼지의 출처는 석탄 화력발전소다. 지난 6일 산자부 장관이 석탄 화력발전소 10기를 2025년까지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산자부장관은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지하는 이유를 저탄소-미세먼지 저감에 두었다. 작년 대비 2030년 미세먼지가 24% 줄어든다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나머지 43기의 화력 발전소에도 환경설비를 보완하여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일응 적절한 정책으로 보인다. 미세먼지로 들끓을 수밖에 없는 여론을 잠재우려면 뭔가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30년 넘은 석탄화력 10기를 없애면 산술적으로 그만큼 미세먼지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석탄화력 10기 폐지’ 발표는 자세히 보면 국민홍보용 땜질 처방처럼 보인다. 이미 계획된 20기의 석탄발전소 건설은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석탄 화력발전소는 63기로 늘어날 판이다. 오히려 10기가 늘어난다.
산자부는 배출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새로 짓는 발전소는 설계변경을, 남아 있는 발전소는 시설 개조를 하겠다며 화력발전소 증설 논쟁을 비켜갔다.
미세먼지 문제는 갑자기 올해 생긴 일이 아니다. 또한 녹색성장을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문제였다. 즉 이산화탄소감축과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 규제를 위한 석탄화력 발전소의 규제 또는 성능개선 및 설계변경은 진작 추진됐어야 했다. 이제 와서 느닷없이 화력발전의 시설개조와 설계변경 등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과연 미래를 내다보고 에너지 정책 운용을 고민했는지 의심스럽다.
지금은 기후변화 시대이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내뿜는 석탄에너지는 역풍을 맞고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화력발전소 규제정책이 진행 중이다. 그 결과 강력한 석탄산업의 로비가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월스트리트가 석탄 관련 산업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다. 영국이 2025년 석탄 화력발전소를 전면 폐쇄할 계획이다. OECD국가의 석탄 소비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다만 중국과 인도 등은 석탄 소비를 계속 늘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도 작년 채택된 파리협정의 이산화탄소감축 계획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중국은 기후변화의 위협을 직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 발생국가로 피해가 계속 생기면서 석탄사용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석탄은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간 인류 문명에 기여했고 한국의 산업화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문명은 석탄을 멀리하려 하는 추세에 있다. 25년간 사우디의 석유장관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자키 야마니가 은퇴 후 석유시대의 종언을 예언하며 이런 말을 했다.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다.” 석탄이 있어도 석탄사용을 자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은 국토 규모, 산업 구조, 인구, 그리고 국민의 에너지 소비 성향으로 볼 때 친환경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나라이다. 화석연료와 원자력발전을 에너지원의 두 기둥으로 삼아 온 것은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미세먼지 이슈가 가져온 석탄 화력발전소 문제에서 드러났듯이, 도전적이고 획기적인 신재생에너지개발을 포함한 유연한 에너지원 배합(MIX)정책이 창안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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